1981년 국립중앙박물관 조사단이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일대의 지표조사를 실시할 때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 도로공사로 대부분 파괴된 상태였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이 부근에 도로를 개설할 때 많은 숯과 불에 탄 흙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전북대학교에 의한 발굴 당시 부식암반층 위에 불에 탄 숯과 토층이 20㎝ 내외 두께로 쌓여 있었다.
집터는 대부분이 파괴돼 북쪽의 일부만 잔존해 있었다. 잔존해 있는 집터는 크기가 남북 145㎝, 동서 270㎝인 삼각형 모양이다. 그러나 잔존상태로 보아 이 주거지의 원래 형태는 방형(方形)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닥에서는 숯 등이 출토되고, 불에 탄 흔적이 완연하여, 이 주거지의 폐기가 화재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닥 전면에는 토기조각이 깔려 있었다. 벽의 구성물로 보이는 흙과 풀로 뭉쳐진 불에 탄 덩어리도 발견되었다.
이 집터에서 출토된 토기는 민무늬토기와 김해식 토기로 대별된다. 민무늬토기는 외반구연(外反口緣)을 가진 발형토기(鉢形土器)와 호형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직립구연부조각[口緣部片]은 1점만이 출토되었다.
김해식 토기는 회청색 경질토기(硬質土器)와 바탕흙에 모래알이 섞인, 보다 연질의 회색 와질토기(瓦質土器) 및 적갈색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적갈색 토기조각이 제일 많은 편이다. 기형은 목이 달린 호형토기(壺形土器)와 외반구연토기가 있다.
회색 경질토기는 다른 토기와 달라 정선된 바탕흙을 사용하였으며 소성도가 높다. 수량은 극히 적은 편이다. 토기의 문양은 격자문을 타날(打捺)한 것이 대부분이며 극히 소량의 승문조각[繩文片]이 있다.
이러한 출토토기의 성격과 방형주거지의 형태는 춘천시 중도(中島), 가평군 마장리집터와 비슷해 시기도 대체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