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리에서 서남방향으로 약 4㎞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고정산에서 남으로 길게 뻗어내린 산줄기가 끝나는 언덕에 위치해 있다.
고분의 외형은 방대형(方臺形)이며, 묘실의 구조는 네모난 널방[玄室]과 널방 남벽 중앙에 달린 널길[羨道]로 된 외방무덤[單室墳]이다. 널방 입구에는 1장으로 된 돌문이 있다.
네 벽은 납작한 화강암 판석으로 2m 높이까지는 직선이지만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내경되었다. 천장가구는 3단의 평행 굄 위에 2단의 모줄임을 하고 가운데에 덮개돌[蓋石]을 덮었다.
벽화는 인물풍속도가 2~3㎝ 두께로 회칠한 벽면에 그려졌다. 널길의 좌우에는 오른손에 긴 칼을 치켜들고, 왼손에는 긴 창을 들고 있는 문지기를 그렸다.
널방의 남벽의 서쪽과 동쪽에는 주인공이 검은 모자를 쓰고 누런 겉옷을 입고 시종이 든 꽃양산을 받으며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있다. 널방[玄室] 서벽에는 곡예를 관람하는 귀족부부와 시종들의 행렬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교예장면은 안악 9호분, 강서 약수리벽화고분, 대동 팔청리벽화고분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북벽에는 주인공 부부의 실내생활도가 그려져 있고, 우진각 지붕의 건물 한 채가 그려져 있어 당시 건물모양을 알 수 있다. 주인공 부부는 장막을 거둬 올리고 평상에 앉은 채, 많은 남녀 시종들의 시종을 받고 있다.
동벽의 윗부분에는 팔짱을 끼고 서있는 두 사람 앞에서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랫 부분에는 주인공의 실내생활도가 있는 북벽을 향하는 행렬도가 그려져 있다.
이 고분과 같이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벽화고분으로는 쌍영총(雙楹塚)과 강서 약수리벽화고분이 있다. 이 고분의 축조시기는 대체로 5세기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