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무녀도」·「농악놀이」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초기 작품은 소박한 기법의 자연풍경과 인물상 및 정물이었으나,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민계층 삶과 풍속적인 정경을 주제로 한 토속적인 표현으로 독자성을 나타냈다. 당시 양화계에서 인물 중심의 풍속화가로 유일한 존재였다. 1936년부터 1940년까지는 먹, 붓과 전통적인 채색기법으로 민족사회의 현실적인 생활상을 그린 작품을 유화와 병행하여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는 양면성을 보였다. 1930년 무렵부터는 서화협회전람회에도 참가하여 유화와 전통회화를 같이 출품하였다.
한편 생계를 위하여 직장에서 도안과 포스터 등의 디자인 그림도 그리게 되어 광복 직후인 1946년에는 조선상업미술가협회를 조직하여 회장직을 맡았고, 서울의 대동상업학교와 대신상업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시작되자 공예부의 추천작가 및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53년 휴전 직후 죽을 때까지 서울신문사에서 촉탁생활을 하였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무녀도」(1941)와 「농악놀이」(1941)가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한국 근대미술의 한국성』(윤범모, 가나아트, 1995)
- 『한국양화의 선구자들』(정규, 신태양사, 1957)
- 「한국양화사의 한국인상」(이구열, 『한국인물화전』, 호암갤러리, 1987)
- 한국현대미술관(www.moca.go.kr)
주석
-
주1
: 작가가 생전에 남긴 작품을 따로 모아서 여는 전시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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