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성, 대사헌,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수찬·필선(弼善)·부교리(副校理) 등을 역임하던 중 1729년(영조 5) 기유처분(己酉處分)으로 실시된 탕평책에 반발하여 퇴거하기도 하였으나 다시 환로에 진출하여 1735년 부제학(副提學), 1738년 대사성, 1740년 대사헌을 거쳐 1753년 좌참찬에까지 이르렀다.
1716년 병신처분(丙申處分) 뒤 윤선거(尹宣擧)의 서원과 문집목판을 훼철할 것을 청하였으며 1719년에는 희빈장씨(禧嬪張氏)의 묘를 이장할 때 동궁이 망곡(望哭: 먼 곳에서 어버이의 상사에 대해 그곳을 향해 슬피우는 일)하려는 것을 막는 등 과격한 노론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글씨에 능하여 많은 비문을 썼다. 문집으로 『퇴어당유고(退漁堂遺稿)』가 전한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경종개수실록(景宗改修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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