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신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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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체신요원 양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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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6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체신요원 양성학교.
연원 및 변천

전신은 근대학교의 한 유형으로서 1897년에 설립된 우무학당(郵務學堂)과 전무학당(電務學堂)을 들 수 있다. 우무학당은 프랑스인 길맹세(吉孟世)가, 전무학당은 덴마크인 밀윤사(密倫士)가 각각 기술 주임으로 일하였다.

전무학당과 우무학당의 교육은, 처음에는 한성전보총사(漢城電報總司)와 우체총사(郵遞總司)에서 신설사(新設司)의 주사요원(主事要員) 양성을 위주로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1900년 통신원령(通信院令) 제6호 <우무학도규칙>과 통신원령 제7호 <전무학도규칙>이 제정, 시행됨에 따라 학제를 정비하게 되었다.

이 때의 우무학당과 전무학당의 교장은 통신원의 참서관(參書官) 또는 한성우체총사장(漢城郵遞總司長)와 전보총사장(電報總司長) 중에서 외국어 및 우무와 전무에 능숙한 자로 하여금 겸임하게 하였다.

또한, 만 15세 이상 30세 미만의 신체 건강하며 문학과 수학에 우수한 자를 매년 25명씩 고시 선발하여 관급생(官給生)으로 1년간 수학하게 하였다. 졸업한 뒤에는 다시 1개월간 한성전보총사와 한성우체총사에서 실무견습하게 하였다. 그 뒤 성적순으로 우체사(郵遞司)와 전보사(電報司)의 주사로 임용하였다.

우무학당의 교육내용은 국내 우편규칙 및 세칙·국제우편 관계규정·외국어·산술 등이었으며, 전무학당의 교육내용은 통신술·타보(打報)·전보규칙·전기학리(電氣學理)·외국어·산술 등이었다. 그러나 우무학당과 전무학당의 양성제도는 1905년 <한일통신합동운영협정>에 의하여 폐지되었고, 1908년 4월부터 1910년 6월 사이에는 전기통신에 관한 간이한 수습방법을 통하여 약간의 종업원을 보충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그 뒤 1913년에 이르러 체신 업무 전습생(傳習生) 양성규칙이 제정, 시행됨과 동시에 체신본부 감리과(監理課)에 양성계(養成係)를 설치하고, 전기통신·전신전화의 공무(工務) 등에 관한 특수기술자의 양성을 재개하였다.

1918년에 이르러 이를 확장하여 체신이원양성소(遞信吏員養成所)를 설치하고, 같은 해 5월 서울시내 창성동으로 이전하였다. 1937년 용산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고, 광복과 더불어 1946년 1월 체신학교로 개편하였다. 1957년 7월에는 대통령령으로 체신제학교의 설치령이 공포되어 체신학교·체신고등학교 및 체신공무원 제교육기관을 설치하게 되었다.

그 뒤 체신학교는 1961년 10월 체신공무원훈련원 발족과 더불어 폐교되었다. 이 훈련원은 1964년 7월 체신공무원 교육원과 전기통신훈련소로 분리되고, 1970년 2월 체신공무원훈련소로 통합되었다가 1977년 7월 체신공무원교육원으로 개칭되었다. 2013년 3월 우정공무원교육원으로 명칭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전기통신사업팔십년사』(체신부, 1966)
『한국개화교육연구』(손인수, 일지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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