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통일신라의 제43대 희강왕의 아버지로, 시중, 국상, 병부령 겸 수성부령 등을 역임한 왕족.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819년 1월 병으로 보행이 불가능하였다고 하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그 직후에 병으로 죽은 듯 하다. 837년(희강왕 2)에 희강왕에 의하여 ‘익성대왕(翼成大王)’으로 추봉되었다.
신라 하대에 들어와서는 왕실 및 진골귀족집단 내부에서 혈족관념의 분지화 경향이 전대에 비하여 더욱 촉진되었다.
그리하여 원성왕계 내부에서도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인겸계(仁謙系)·예영계(禮英系)의 대립이 있었고, 예영계내에서도 두 아들인 헌정과 균정(均貞) 양 계보의 알력이 있었다. 그래서 희강왕 이후의 왕위계승은 헌정계와 균정계의 연합과 대립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신라 원성왕계의 왕위교체」(오성, 『전해종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 1979)
- 「신라하대의 왕위계승과 정치과정」(이기동, 『역사학보』85, 1980)
- 「신라하대 균정계의 왕위계승과 김양」(윤병희, 『역사학보』96,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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