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태조 1) 호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전라도 안렴사로 있으면서 전국 각 도에 의학원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였다. 1395년 노비변정도감의 판사가 되었으며, 동지중추부사로 재직 중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중추원부사로서 충청·전라·경상도에 내려가 백성들의 병고를 묻고 돌보았다. 1398년 원주목사를 거쳐 1402년 참지의정부사·서북면도순문찰리사가 되었다. 1404년 대사헌·지의정부사를 거쳐 이듬해 경상도관찰사, 1406년 형조판서가 되었다.
이듬해 부친의 병으로 참찬의정부사 겸 대사헌직을 사직하고자 하니 효성이 지극함이 더욱 빛났다. 곧 호조판서가 되었으며 의학에 정통하여 중요한 의학서적들을 저술하였다. 편저로는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우마의방(牛馬醫方)』 등이 있다. 시호는 원정(元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