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기언정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1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권1·2는 시, 권3은 소, 권4∼7은 서(書), 권8은 서(序)·기·발·제문·축문, 권9는 행장·묘문, 권10은 부록으로 만장(輓章)·제문·가장·행장·시장(諡狀) 등이 실려 있다.
시는 대부분이 차운시(次韻詩)로, 그 내용이 온아하고 진실해 기교를 부린 구석이 없다. 그의 형이 함경북도 종성(鍾城)에 유배되었을 때 같이 따라가 있으면서 지은 작품으로 「여랑가(女娘歌)」·「사미인가(思美人歌)」·「의고악부사(擬古樂府詞)」 등이 들어 있으며, 임군집(任君楫)·최명옥(崔鳴玉)·양재옥(梁載沃)·양재호(梁載灝)·조경(趙璥)·송익빈(宋益彬)·이택곤(李宅坤) 등 당시 저명인사에 대한 만시가 수록되어 있다.
소는 당시 정책의 득실을 들어 진정한 것으로, 정성과 노력이 부족한 점과 전조(銓曹: 문·관의 전형을 맡은 이조와 병조)에서 사람을 등용할 때 신중하지 못한 점을 지적한 장편이다.
서(書)에는 김상정(金相定)·고득겸(高得謙)·정일환(鄭日煥)·조환(趙瑍)·조경·이규량(李奎亮)·김종수(金鍾秀)·이병모(李秉模)·이홍재(李洪載)·송재경(宋載經)·김이행(金履行)·심양오(沈養五)·성정진(成鼎鎭)·윤시동(尹蓍東) 등과 주고받은 서한이 대부분인데, 그 내용은 대체로 학문에 관한 토론이다.
「조현주초서서(趙玄洲草書序)」는 조찬한(趙纘韓)의 초서(草書)에 대해 필법이 왕희지(王羲之)·왕종(王鍾)·안진경(顔眞卿)·유공권(柳公權)의 체도 아니고 스스로 연구해 한 필체를 이루어 필가(筆家)의 골수를 이루었다고 평하고, 이 모두가 기(氣)가 아니면 될 수 없다며 『동국필보(東國筆譜)』에 올라도 손색이 없다고 강조한 글이다.
기(記)의 「최연촌화상기(崔烟村畫像記)」는 최덕지(崔德之)의 화상에 대해 행적과 아울러 찬(贊)을 한 것으로, 영암에 있는 유상(遺像)을 남원에 살고 있는 자손들이 별도로 한 부를 모사(模寫)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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