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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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하였고, 『남간집』, 『남간집선』 등을 저술한 문인·의병장.
이칭
  • 호남간(南磵)
  • 자응서(應瑞)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84년(선조 17)
  • 사망 연도1638년(인조 16)
  • 본관나주(羅州)
  • 출생지나주(羅州)
  • 주요 관직별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문수홍 (경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하였고, 『남간집』, 『남간집선』 등을 저술한 문인·의병장.

개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응서(應瑞), 호는 남간(南磵). 나주 출신. 아버지는 궁궐도감 나덕양(羅德讓)이다. 강항(姜沆)의 문인이며 한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도 학문을 익혔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7년(광해군 9) 별시 문과에 장원하였으나 정론(正論)을 썼다는 이유로 시관 권진(權縉)이 합격자 명단에서 빼버렸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집하였다.

1629년 동당 별시에 급제, 별제(別提)를 지낸 뒤 병자호란 때 다시 격문을 돌렸다. 장유(張維)와는 진사동방(進士同榜)으로서 특히 친교가 두터웠으며, 두 사람의 시를 모아 엮은 시집인 『계간수창(谿磵酬唱)』과 아울러 시문을 모은 『남간집(南磵集)』·『남간집선(南磵集選)』이 전한다.

참고문헌

  • - 『남간집(南磵集)』

  • - 『남간집선(南磵集選)』

  • - 『계간수창(谿磵酬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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