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표현한다면 낙농학이란 축산학의 한 분야로서 토지를 이용하여 젖소를 사육하며, 인간 생활에 필요한 우유와 고기를 생산하고 가공하는 체계에 관한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낙농학은 기본적으로 응용학문이기 때문에 낙농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기초학문들을 필요로 한다.
즉, 젖소의 유전현상이나 개량에 필요한 유전학과 육종학, 영양학에 기초한 사양학, 생리학에 입각한 번식학, 화학이나 미생물에 기초한 유가공학, 사료작물학, 위생학, 그리고 낙농기계학 등이 낙농학의 기초 학문들이라 하겠다. 그러나 급변하는 학문 세계에 있어서 낙농학의 영역도 과거의 전통적 범주에만 머물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지난 30여년 동안 우리 나라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과 함께 낙농제품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대되어 우리 나라 낙농산업은 그 규모나 양적인 면에서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동시에 우리 나라 전체 농업생산물 중에서 낙농생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 중요성은 증대될 것이다.
이와 같은 추세는 결국 낙농생산물에 대한 대량생산 체제를 요구하게 되었으며, 이는 반대로 자연자원의 파괴를 수반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낙농학의 주된 관심은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속적 낙농의 개발에 있다.
지속적 낙농의 기본과제라 하면, 첫째 가용(可用)자원 활용에 대한 효율성 제고의 문제이며, 둘째 사회경제적 내지는 환경적 피해를 어떻게 하면 극소화시킬 수 있는냐에 있으며, 셋째 생물자원에 대한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낙농생산체계를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있다.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전통적인 낙농학의 학문계열 이외에 생명공학, 컴퓨터의 활용, 그리고 환경보존에 관한 미래 지향적인 학문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 필요한 실정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베풀어 준 첫 식품이 우유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유는 오랜 옛날부터 인류의 귀중한 식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유는 언제부터 인류의 식품으로 이용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고대의 벽화나 종교서적들의 기록에 의하면 이미 약 4천년 전부터 우유는 인류의 중요한 식품으로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한편, 우리 나라 낙농역사에 관한 고증자료는 거의 없는 형편이며, 다만 단편적으로 발표되는 자료에 의하면, 고구려의 귀족사회에서는 이미 젖소를 길러서 짠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한, 조선 철종 7년에도 젖소를 사육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일제강점기에서도 젖소가 사육되었으나 그때의 낙농산업발전은 일본 사람들의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독점 운영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낙농산업 발전이나 낙농가들의 소득증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따라서 한국 낙농의 현대적 의미에서의 시발점은 1962년이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정부의 강력한 낙농진흥정책의 일환으로 주로 미국·캐나다·호주, 그리고 뉴질랜드 등에서 젖소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젖소사육두수는 2,406두에 국민 1인당 연간 우유소비량이 0.1㎏에 불과하였으나 2000년 현재 총사육두수는 56만 5000두에 국민 1인당 우유소비량도 60㎏에 달하여 급격한 신장세를 보였으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 지속될 것이다.
학회활동은 1978년 부터 ≪낙농학≫ 학회지를 발간하여 22회까지 발행하고 2000년 3월부터는 ≪한국동물자원과학≫ 학회지로 통합되었다.
농업에 관한 최초의 전문교육기관으로는 1906년 설립된 수원고등농립학교를 들 수 있으나 낙농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대학으로는 1964년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내에 설립된 낙농학과가 최초이었으며, 그 뒤 전국적으로 9개 대학에 낙농학과가 더 증설되었다.
21세기 낙농교육은 환경보존이나 인류의 건강에 역점을 둘 뿐만 아니라 낙농의 정보화에도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한편, 생산자 단체로서 축산업협동조합과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우리 나라 낙농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1978년 창립된 한국낙농학회는 연구와 기술개발을 통하여 낙농 발전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한국낙농학회는 2000년 2월 다른 3개 학회와 함께 새로운 한국동물자원과학회가 창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