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향악 악조(樂調)의 이론적 설명에 쓰인 음악용어의 하나.
‘좌조(左調)’라고도 한다. 개념은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조금씩 바뀌었다. 본래 낙시조는 조선 초기 어느 악조에서 쓰인 기본음 또는 중심음의 높낮이를 표시하는 조명(調名)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한때 평조(平調)와 같은 의미의 선법명(旋法名)으로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
조선 초기 세종 때 박연(朴堧)이 올린 상소에 의하면, “향악에서 쓰인 악률인 낙시조는 중려 또는 임종 두 가지를 중심음인 궁으로 번갈아 사용한다(但鄕樂所用之律 則樂時調互用仲呂林鐘二律之宮).”라고 하였듯이, 원래 어느 악조에서 쓰인 중려·임종 두 중심음의 높이를 표시하는 조명으로 쓰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성종 때 이르러 더욱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어 협종(夾鐘)에서 남려(南呂) 사이의 어느 음을 중심음으로 삼는 악조의 총칭으로 사용되었다. 즉, 협종이나 고선(姑洗)을 궁으로 삼은 일지(一指), 중려나 유빈(蕤賓)을 궁으로 삼은 이지(二指), 임종을 궁으로 삼은 삼지(三指), 그리고 이칙(夷則)이나 남려를 궁으로 삼은 횡지(橫指) 등 네 가지 조의 총칭으로 쓰였다.
성종 때 낙시조라는 명칭은 향악의 칠조(七調) 중 높은 음을 중심으로 하는 횡지·우조(羽調)·팔조(八調)·막조(邈調)의 네 가지 조를 모두 부르는 우조의 대칭어로 사용되었다. 당시에 낙시조라는 조명은 낙시조평조 또는 낙시조계면조(樂時調界面調)와 같이 선법명 앞에 붙여서 사용되었다.
낙시조평조는 우조평조의 대칭 악조로, 낙시조계면조는 우조계면조의 대칭 악조로 각각 쓰였는데, 이때의 낙시조는 우조에 비하여 낮은 음을 중심음, 즉 궁으로 삼는 조명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의 거문고 악보인 양덕수(梁德壽)의 ≪양금신보 梁琴新譜≫(1610)에 의하면, 낙시조는 오직 임종을 중심음으로 삼은 평조라는 선법명과 같은 의미로 쓰였으며, 조선 초기에 다양하게 쓰인 조명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요컨대, 낙시조의 개념은 조선 초기에 어느 악조에서 중심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조명으로 쓰였지만, 임진왜란 이후 한때 선법명으로 사용되다가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