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3년(헌종 9) 서사원의 후손 서택렬(徐宅烈)에 의해 편집·간행되었다. 권두의 중간서(重刊序)로 보아 초간본이 있는 듯하나, 분명하지 않다. 권두에 박광석(朴光錫)과 마인순(馬麟淳)의 중간서가 있다.
10권 4책.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권1·2에 시·부(賦), 권3·4에 서(書), 권5에 묘갈·비문·제문·축문, 권6·7에 잡저, 권8∼10에 부록으로 연보·행장·묘갈명·상량문·봉안문·제문(祭文)·만사·제현척독(諸賢尺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의 「공부차록(工夫箚錄)」은 여러 책을 보면서 핵심이 되는 요체만을 뽑아 적어놓은 것이다. 대부분이 철학에 관한 것으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을 비롯해 성(性)·심(心)·명(命)·이(理)·정(情)·정자(程子)·주자(朱子)·맹자(孟子) 등 69항목이 적혀 있고, 그밖에 인도(仁圖)·구인도(求仁圖)·성경도(誠敬圖)·일신도(日新圖)·율려도(律呂圖) 등 많은 도식이 있다.
「학교모범(學校模範)」은 입지(立志)·검신(檢身)·독서(讀書)·신언(愼言)·사친(事親)·사사(事師)·택우(擇友)·응거(應擧) 등 16개 조항을 모범으로 제정해, 각 조항마다 상세한 해설과 세칙을 붙여 제자들에게 실천하도록 권장한 것이다. 「선사정사학규(仙査精舍學規)」·「정사약속(精舍約束)」·「시정사학도(示精舍學徒)」는 학도들이 준수해야 할 사항을 논술한 것이다.
「초집향병문(招集鄕兵文)」은 임진왜란 때 향병을 소집한 격문(檄文)이다. 의령의 곽재우(郭再祐)와 합천의 김면(金沔)·정인홍(鄭仁弘) 등 의병을 일으킨 사실이 자세히 적혀 있으며, 저자의 고을에서도 각자 자제와 노복들을 거느리고 관군과 합세해 싸우자는 내용이다. 「향병입약(鄕兵立約)」은 향병을 선발하는 과정의 규약 10개 조항이 첨부되어 있다.
「승차걸속문(承差乞粟文)」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차사원(差使員)의 명을 받고 군량(軍糧)을 구하는 통문이다. 당시 충청도에서 영남에 와 있는 군졸 1만인의 군량을 돕자는 내용이다.
「대찬획사격문(代贊畫使檄文)」은 정유재란 때 찬획사(贊畫使)를 대리로 포고한 격문이다. 당시 청안현감(淸安縣監)으로 새재[鳥嶺]를 지키고 있을 때, 주둔하고 있는 체찰사(體察使)를 도와 여러 고을의 사림들을 감동시킨 글로, 명나라 구원병 40만 대군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려 합세해 싸우자는 내용의 마상격초문(馬上檄草文)이다.
15·16세기 교육사연구, 또는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한 의병활동상황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