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헌종 1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시열(宋時烈)·김창집(金昌集)·김제겸(金濟謙)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묘우(廟宇)와, 강당(講堂)인 이지당(二止堂), 동재(東齋)인 거인재(居仁齋), 서재(西齋)인 유의재(由義齋), 정문(正門)인 계개문(繼開門), 그리고 주사(廚舍) 등이 있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