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 어영청(御營廳)의 분영(分營).
내용
서울 남부 명철방(明哲坊 : 현재 중구 장충동)의 남소문 터 근처에 있었다. 청사는 모두 194칸이었다. 여기에는 초관(哨官) 1인과 지방군 12인이 입직하였는데, 후에 9인으로 줄었다.
참고문헌
- 『만기요람(萬機要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어영청연구(御營廳硏究)」(최효식,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40, 1983)
- 「어영청(御營廳)에 대한 일연구(一硏究)」(최효식, 『군사(軍史)』5,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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