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부(敬夫), 호는 국당(菊堂)·국은(鞠隱)·춘곡(春谷). 할아버지는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박시용(朴時庸)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윤 박천귀(朴天貴)이며, 어머니는 옥천육씨(沃川陸氏)로 전객사령(典客司令) 육신우(陸臣佑)의 딸이다.
일찍이 문명을 떨쳐서 1386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390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리하여 김훈(金訓)·서호(徐皞), 사촌동생 박연(朴堧) 등과 김자수(金子粹)의 문하에서 학업에 전념하였다.
이를 지켜본 이색(李穡)이 박흥생의 재주를 칭찬, 추천하여 여흥부(驪興府)·춘천부(春川府)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강의는 치밀하고 상세하여 원근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1423년(세종 5) 창평현령에 제수되어 기강을 엄히 하고 소송을 분명히 하여 칭송이 컸으나, 친상을 당하여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 만년을 자연과 더불어 보냈다.
고향에 정자를 세워 이락정(二樂亭)이라 하였다. 1427년(세종 9) 동생 박흥거(朴興居)와 전답을 가지고 분쟁하다가 사헌부에 의해 탄핵, 파직되었다가 1455년 세조가 즉위하면서 고신(告身: 벼슬길에 오른 관리의 임명 사령장)이 환급되었다.
저술로는 『촬요신서(撮要新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