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오위도총관, 장악원제조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93년(성종 24)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이 되어 군대 통솔의 책임을 맡았고, 이어 상의원제조(尙衣院提調)를 지냈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다시 도총관을 역임하고, 1501년(연산군 7)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올랐다. 이 때 대간들이 부적당하다고 탄핵했으나 오히려 판돈녕부사로 승진되고, 이듬 해에는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1504년 소혜왕후(昭惠王后)가 죽자 산릉도감제조(山陵都監提調)로서 상례를 잘 처리하였다. 이듬해에는 장악원제조(掌樂院提調)가 되어, 흥청(興淸) 200인, 운평(運平) 1,000인, 광희(光熙) 1,000인을 모아 악률을 교육하면서 연산군의 유락(遊樂)을 도왔으며, 그 공로로 1506년에는 한성부판윤에 올랐다.
이어 경기순무사(京畿巡撫使)로 나갔다가 중앙으로 돌아와 박원종(朴元宗) 등이 중종반정을 도모하자, 이에 가담해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능천부원군(綾川府院君)에 봉해졌다. 그 뒤 영경연사(領經筵事)를 겸했으나 사직하여 체직되었으며, 이후 연산군의 충복이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았다. 효성이 지극하고 성품이 자상했으며 음률과 악기에 재주가 있었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목계일고(木溪逸稿)』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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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부친 : 『세조실록』 41권, 1467년(세조 13) 1월 29일. "영응 대군 이염의 사위를 정하고 입시한 제신에게 종친의 도리에 대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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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가계 : 『국조인물고』 권36, 구수영 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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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영응대군의 사위 : 『세조실록』 41권, 1467년(세조 13) 1월 29일. "영응 대군 이염의 사위를 정하고 입시한 제신에게 종친의 도리에 대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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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정국공신 책록 : 『중종실록』 1권, 1506년(중종 1) 9월 8일. "공신을 책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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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능천부원군 제수 : 『중종실록』 1권, 1506년(중종 1) 9월 13일. "유순·김수동·박원종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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