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영경연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러나 연산군의 실정이 심해지자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공되고, 영창군(永昌君)에 봉해졌다. 그 뒤 의정부좌참찬을 거쳐 1508년(중종 3) 형조판서를 지내고 좌찬성에 올랐다.
그러나 신진 사림의 진출과 함께 훈구파(勳舊派)로 지목되어, 연산군 때 아부, 순종하며 벼슬하였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그 뒤에도 계속된 탄핵으로 사직하고자 하였으나, 중종의 만류로 예조판서에 그대로 재임하였다. 1518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사림파가 주동한 정국공신의 위훈삭제로 공신호가 삭제되었다.
기묘사화로 다시 관직에 진출하여 좌찬성 · 이조판서 · 영경연사(領經筵事) 등을 거쳐 1523년(중종 18) 우의정을 역임하고, 영창부원군(永昌府院君)에 봉해졌다. 성품이 엄격하고 재주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감시생원진사방(監試生員進士榜』(『탁영선생연보(濯纓先生年譜)』(국립중앙도서관 한古朝57-가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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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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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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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생원 급제 : 『감시생원진사방(監試生員進士榜)』(『탁영선생연보(濯纓先生年譜)』 續下(국립중앙도서관 한古朝57-가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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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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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영창군 책봉 : 『중종실록』 1권, 1506년(중종 1) 9월 13일. "유순·김수동·박원종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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