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명(仲明), 호는 폐호(閉戶). 권근(權近)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참판 권이(權頤)이고, 아버지는 권화(權和)이며, 어머니는 부정(副正) 윤건(尹健)의 딸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송씨(宋氏) 슬하에서 자랐다. 영의정 윤국형(尹國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윤국형의 사위가 되었다.
1594년(선조 27) 군자감참봉이 되었고, 이듬해 교하현감(交河縣監)을 지냈다. 같은 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호조좌랑에 부임하고, 이어서 내외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13년(광해군 5)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지방행정을 잘 다스려 길천군(吉川君)에 봉해졌다. 그뒤 순검사(巡檢使)로서 해변방어에 힘썼으며, 나주목사·강화부사, 함경도·경기도·충청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626년(인조 4)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이원익(李元翼)이 경기도에 시행한 대동선혜(大同宣惠)의 정책을 본받아 한 도(道)의 전세(田稅)와 부역을 공평히 하려 하였으나 성사시키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김육(金堉)이 이를 참고하여 대동법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그 뒤 내직으로 옮겨 형조판서를 지냈는데, 직무에 있어 공평무사하고 합리적이어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서화에도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