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반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관찰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중명(仲明)
폐호(閉戶)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4년(명종 19)
사망 연도
1631년(인조 9)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관찰사|형조판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관찰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명(仲明), 호는 폐호(閉戶). 권근(權近)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참판 권이(權頤)이고, 아버지는 권화(權和)이며, 어머니는 부정(副正) 윤건(尹健)의 딸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송씨(宋氏) 슬하에서 자랐다. 영의정 윤국형(尹國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윤국형의 사위가 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4년(선조 27) 군자감참봉이 되었고, 이듬해 교하현감(交河縣監)을 지냈다. 같은 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호조좌랑에 부임하고, 이어서 내외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13년(광해군 5)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지방행정을 잘 다스려 길천군(吉川君)에 봉해졌다. 그뒤 순검사(巡檢使)로서 해변방어에 힘썼으며, 나주목사·강화부사, 함경도·경기도·충청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626년(인조 4)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이원익(李元翼)이 경기도에 시행한 대동선혜(大同宣惠)의 정책을 본받아 한 도(道)의 전세(田稅)와 부역을 공평히 하려 하였으나 성사시키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김육(金堉)이 이를 참고하여 대동법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그 뒤 내직으로 옮겨 형조판서를 지냈는데, 직무에 있어 공평무사하고 합리적이어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서화에도 능하였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동주집(東州集)』
『한국계항보(韓國系行譜)』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