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예문관 검열을 역임하고, 성균관에서 후학을 지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성종 때에는 학덕으로 이름이 높아지면서 주백손(朱伯孫) · 김극검(金克儉) · 정구년(鄭龜年) · 주계정(朱繼程) 등과 더불어 사표(師表)가 될 만하다는 조정의 평가에 따라 서용(敍用)되었다. 그러나 연산군이 즉위하여 폭정이 계속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단성(丹城)의 별장으로 낙향하였다.
그리하여 산수간을 소요하면서 여생을 즐기는 한편 후진교육에 힘쓰니, 문하에는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어득강(魚得江) · 김수경(金守敬) · 이적(李迪) 등은 모두 강문회의 문인이었다. 천성이 순후하고 준정(峻整: 엄숙하고 단정함)하였으며 심기를 바로 하고 행동에 가식이 없었다. 시문에 능하였는데, 특히 간고(簡古: 간결하고 예스러움)하여 많은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
저서로는 『소요당기(逍遙堂記)』가 있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문과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