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도굴에 의해 드러난 돌덧널무덤 1기가 조사 보고되어, 1988년 전북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유적은 경상남도 함양군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850m 높이의 상산(霜山)의 서북쪽 구릉상에 위치해 있다. 주변 일대에는 350여 기의 고분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발굴조사는 2차에 걸쳐 실시되었다. 1차에서는 18기의 돌덧널무덤이 조사되었고, 2차에서는 7기의 돌덧널무덤과 2기의 널무덤이 조사되었다. 고분은 산의 경사면을 이용해 봉분이 축조돼, 봉토의 유실이 심하다. 대부분 도굴돼 봉분의 윤곽과 규모가 분명하지 않다.
돌덧널들 중 ‘가’지구에서 조사된 것들은 그 소속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나’ · ‘다’ 지구에서 조사된 것들은 하나의 봉토 아래 여러 개의 돌덧널이 있는 형식이다. 이 경우 대체로 1기의 으뜸덧널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크기가 작은 덧널이 딸린 형태를 보인다.
이와 같은 구분 외에 돌덧널의 크기에 의하여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될 수도 있다. 으뜸덧널에 속하는 것들은 길이가 300㎝ 이상이고, 보통 150∼200㎝ 내외의 것들이 많으며, 100㎝ 내외의 소형의 것도 있다.
돌덧널 중 소형은 주로 1매의 판상석을 이용해 측벽을 축조하였다. 그 밖의 것들은 아래에 넓고 평평한 깬돌이나 냇돌을 세우고 그 위에 냇돌과 깬돌을 여러 단 쌓아서 만들었다. 뚜껑돌은 없어진 것이 많으나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깬돌덩어리를 이용했으며, 바닥은 생토바닥을 이용하였다.
돌덧널의 대부분이 도굴되어 유물은 많지 않으나 가야계 토기를 비롯한 유물이 수습되었다. 또, 일부에는 백제토기적인 속성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유적의 연대는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백제문화가 침투하기 시작한 때를 전후한 시기, 즉 6세기 전반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한편, 널무덤은 돌덧널무덤을 파괴하고 축조되어 그 중 1기는 분청사기병 등이 껴묻힌 조선 전기의 널무덤이며, 다른 1기는 껴묻거리가 없는 널무덤으로 조선 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