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세전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송동면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독 · 바리 · 목긴단지 · 귀때토기 관련 집터. 움집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송동면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독 · 바리 · 목긴단지 · 귀때토기 관련 집터. 움집터.
개설

요천(蓼川)과 수지천(水旨川)이 합류해 섬진강으로 흘러가면서 이룬 충적대지 위에 분포되어 있다. 1984년에 발견되어 1985년과 1986년에 전북대학교박물관에서 30여 기의 움집터〔豎穴住居址〕를 발굴하였다.

내용

유구(遺構)는 타원형 또는 장방형 평면으로서 25∼35㎡ 내외의 크기이고, 움의 깊이는 얕다. 기둥구멍은 확인되지 않았다. 움집 안에는 예새가 섞여 있는 진흙으로 축조된 화덕자리가 1, 2개소 있고, 그 주변에 대형 독〔甕〕이 놓인 경우가 적지 않다. 바닥은 본바닥인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진흙을 깔았으며, 그 위를 다시 불에 구워 단단하게 한 것도 있다.

출토토기로는 원삼국시대의 독 · 바리 · 귀때토기 · 국자형 토기 · 목긴단지 · 목단지 · 시루 등이 수습되었으며, 5㎝ 미만의 작은 토기들도 있어 이채롭다.

수정 · 흙 · 천하석(川河石) 등으로 만든 각종 구슬이 다량으로 출토되었고, 철기와 석기도 있다. 움집터 주변 흙에서는 불에 탄 쌀 · 보리 · 팥 등의 곡물과 각종 뼈가 검출되었다. 그리고 유구와는 직접적인 관련 없이 세형동검(細形銅劍)과 유리제 구슬이 수습되었다.

출토유물 중 유리제 구슬 · 세형동검 · 수정제 구슬은 자체 내에서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굽다리접시는 그 양식이 가야계통과 연결된다.

소형토기류는 실용품이라기보다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토기들은 형태상 한반도 내의 같은 시기의 다른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들을 거의 모두 포괄할 정도로 기종(器種)이 다양하고 출토량도 많다.

또, 토기 중 목긴단지 · 대형독 등에는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의 것과 상통되는 것도 있다. 그리고 다량 출토된 구슬들은 『삼국지』에 기록된 마한(馬韓)지역에서 구슬을 중히 여긴다는 사실과도 부합된다.

연대는 출토유물에 의해 2∼4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비정된다.

의의와 평가

이 유적은 원삼국시대의 문화상과 교류관계를 구명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발굴조사 뒤 경지정리작업이 시행돼 현재는 논으로 경작되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문헌

「남원세전리유적지표수습유물보고(南原細田里遺蹟地表收拾遺物報告)」(윤덕향, 『전라문화논총(全羅文化論叢)』, 전라문화연구소, 1985)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