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문집

  • 종교·철학
  • 문헌
  • 일제강점기
조선 전기의 학자, 서섭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25년에 간행한 시문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성학 (고려대학교도서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서섭의 남은문집 중 표지 미디어 정보

서섭의 남은문집 중 표지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의 학자, 서섭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25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2권 1책. 목활자본. 1925년경 15세손 석호(錫祜)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이 문집은 집안에 전해오기를 “만일 이것을 내보이면 자손이 멸망할 것이다.”라고 하여 비장(祕藏)되어 오다가 4백여년 만에 발표된 것이다. 권두에 이능구(李能久)·최현필(崔鉉弼)·박성동(朴聲東)·손명원(孫明遠) 등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후손 재호(宰鎬) 등의 발문 11편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6편, 소·서(書)·제문·설 각 1편, 권2는 부록으로 행장·유장(遺狀)·행록(行錄)·신도비명·묘지명·묘갈명·묘비·묘표·유사(遺事) 각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가운데 「문영월사변통곡(聞寧越事變痛哭)」은 1457년(세조 3) 단종이 영월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애통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문육신순절감음(聞六臣殉節感吟)」은 사육신의 순절소식을 듣고 자신의 충정을 토로한 것이며, 「춘야청남산두견(春夜聽南山杜鵑)」 역시 그의 우국충정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척간소(斥姦疏)」에서 그는 선왕(先王: 세종)이 집현전의 여러 신하에게 ‘내가 죽은 뒤에 경(卿)들은 이 아이(단종)를 보호하라.’고 하시던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하였다. 이어 주(周)나라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의 난에 주공(周公) 같은 성인이 아니었다면 주살(誅殺)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한(漢)나라 오(吳)·초(楚)의 변에 아보(亞父)의 힘이 아니었다면 평정하지 못하였을 것이라 하면서 양병(養兵)에 힘써 간사한 무리들을 배척할 것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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