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2년(숙종 3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시열(宋時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권상하(權尙夏)·한원진(韓元震)·윤봉구(尹鳳九)·송환기(宋煥箕)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46년 지방유림에 의해 복원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廟宇), 6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서재(西齋), 신문(神門), 6칸의 주소(廚所) 등이 있다. 묘우의 중앙에는 송시열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권상하와 한원진의 위패가, 왼쪽에는 윤봉구와 송환기의 위패가 각각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마루는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들의 회합 및 학문토론 장소로 사용되며, 협실의 동쪽방은 헌관실로, 서쪽방은 재석(齋席) 및 별유사의 방으로 사용된다.
신문은 향사 때 제관의 출입문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주소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가 사용하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2,000여 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