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오행설』, 『정성서의』, 『심의설』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백춘(伯春), 호는 운음(芸陰). 경상도 예안(禮安)에서 출생하였다. 노수신(盧守愼)의 5대 손이며, 이만부(李萬敷)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9년(숙종 45) 사마시에 합격, 학행으로 조현명(趙顯命)의 추천을 받아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사퇴,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예학에 밝았으며, 『대학장구견의(大學章句見疑)』·『오행설(五行說)』·『정성서의(定性書義)』·『심의설(深衣說)』 등의 저술이 있다. 상주의 옥연사(玉淵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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