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판본. 1850년(철종 1) 6대손 희영(熙永)의 편집을 거쳐 1931년 김주섭(金周燮)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권두에 정홍경(鄭鴻慶)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이종상(李鍾祥)의 후지(後識)와 유치명(柳致明)·강시영(姜時永) 등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은 연보와 시 29수, 권2는 소계(疏啓) 14편, 서(書) 2편, 제문 4편, 갈(碣)·지(誌) 2편, 행장 1편, 권3은 전(箋)·책(策)·잡저, 권4는 부록으로 행장·묘갈명·묘지명·가장후서(家狀後敍)·가장후발(家狀後跋)·만사·제문과 김종일이 심양(瀋陽)에 갔을 때 당시의 명사들이 보낸 시문 등이 실려 있다.
연보에는 김종일이 홍문관교리로 있을 때 허목(許穆) 등과 같이 자의대비(慈懿大妃) 복제(服制) 때 3년설을 주장하다가 평해(平海)에 유배되었던 기록이 있다. 시에는 심양에 있을 때 후금(後金)의 만행으로 인한 쓰라림과 처절한 심정이 묘사되어 있다.
상소문 가운데 정묘·병자 양란에 관한 기록이 많은데, 특히 여러 대신들에 대한 처사를 비평하는 내용이 있으며, 또 정뇌경(鄭雷卿)과 같이 심양에 있을 때의 옛 쓰라림을 못 잊어 혼자 벼슬할 수 없다는 눈물겨운 내용도 있다.
잡저의 「심양일승(瀋陽日乘)」은 그가 사서(司書) 교지를 받고 상사 최명길(崔鳴吉), 부사 김중남(金重南), 서장관 이시매(李時楳) 등과 같이 심양에 도착한 일정과 그 뒤의 전모를 묘사한 일기이다.
「야성문답(野城問答)」은 유배지인 경상북도 영덕(盈德)에서 자문자답한 것인데, 중국 역대의 정치제도와 역사적 대변(代辯)의 전말을 논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