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교하(交河). 자는 사치(士稚), 호는 별유(別宥)·호폐헌(好閉軒)·망포(望浦). 노철강(盧鐵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통례 노언방(盧彦邦)이고, 아버지는 현감 노홍우(盧弘祐)이며, 어머니는 대사헌 김희수(金希壽)의 딸이다.
1569년(선조 2) 알성 문과에 장원, 형조좌랑이 되었는데 형옥(刑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녀 오랫동안 재임하면서 선조의 신임을 받았다. 1573년 정언이 되고 이듬해 군정보충(軍丁補充)의 임무를 맡아 전라도경차관으로 파견되었다.
예문관제학을 거쳐 1576년 수찬이 되고, 동부승지를 거쳐 1582년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 1585년 부제학에 이어 호조·예조판서, 이듬해 시약청제조(侍藥廳提調)가 되었으며, 그 뒤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성품이 강직하여 간리(奸吏)를 적발하는 등 기강확립에 노력하였으며, 정사(政事)에 밝아 승정원 재직 중에는 선조가 해당 관리를 부르지 않고 매사를 노직에게 물을 정도였다. 이원익(李元翼)·유성룡(柳成龍)·강서(姜緖)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시호는 헌민(憲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