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교하(交河). 증조부는 찬성사를 지낸 노경륜(盧景倫)이며, 할아버지는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노영수(盧穎秀)이고, 아버지는 좌정승을 지낸 경양부원군(慶陽府院君) 노책(盧頙)이며, 어머니는 평양공(平陽公) 왕현(王昡)의 딸 경녕옹주(慶寧翁主)이고, 공양왕의 장인이 된다.
아버지 노책이 기철(奇轍)·권겸(權謙)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당함으로 인하여 유배되었으나, 1372년(공민왕 21)에는 판밀직(判密直)이 되어 사은사로 명에 다녀왔다. 그 이듬해에 평리(評理)가 되었으며, 폭우로 인하여 영전(影殿)에 물이 새어든 책임을 지고 찬성사 한방신(韓方信)과 함께 장형을 받았다.
1376년 아들 노선(盧瑄)이 홍륜(洪倫) 등과 더불어 역모를 꾀하다 죽임을 당하자, 그로 인하여 장류(杖流)되었다가 곧 이어 아들 노정(盧楨)·노균(盧鈞)과 함께 주살되고 가산은 적몰(籍沒)당하였다. 1398년 공양왕이 즉위함에 따라 노진의 딸이 순비(順妃)가 되자, 창성군(昌城君)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제효(齊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