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굴식돌방무덤이 조사된 무덤군.
발굴경위 및 결과
고분의 구조는 널길이 달린 굴식돌방무덤으로, 널방의 평면은 장방형, 단면은 육각형이다. 고분에 사용된 석재는 널돌에 가깝다. 돌방 내부에서는 13점의 토기가 수습되었는데, 대부분 교란되어 그 위치가 분명하지 않다. 출토 유물의 수는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백제 사비기 왕릉급과 귀족급 고분에 토기가 거의 부장(副葬)되지 않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후 논산육곡리고분 일대는 도로 개설, 농수로 공사 등 지속적인 훼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대다수 고분이 지표에 노출되었다. 이에 따라 1986년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다수의 고분을 확인하였고, 그 중 13기의 고분을 대상으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고분들은 모두 지하에 축조한 지하식 구조인데, 그 중 10기는 이미 도굴 또는 파괴된 것이지만 3기는 훼손이 거의 없는 고분이었다.
형태와 특징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지 않은 3기의 고분에서 확인되었는데, 2호분에서는 금동 귀걸이 한 쌍과 항아리 3점, 굽다리접시 5조, 깊은바리토기 2점 등의 토기가, 6호분에서는 금동 귀걸이 한 쌍과 토기 2점이, 7호분에서는 은으로 된 꽃 모양의 모자 장식〔銀製花形冠飾〕 1점, 토기 1점과 함께 많은 관고리와 널못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7호분에서 출토된 은으로 된 꽃 모양의 모자 장식은 피장자의 신분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백제 관등제에서 은으로 된 꽃 모양의 모자 장식은 6품, 내솔(柰率) 이상의 관등을 지닌 사람이 착용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무덤의 피장자는 상류 지배층으로 추정된다.
한편 6호와 7호분에서는 인골(人骨)도 수습되었는데, 6호분의 경우 2개체가, 7호분의 경우 3개체가 확인되어 당시 추가장(追加葬)과 같은 매장 풍습도 추정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의의 및 평가
특히 은으로 된 꽃 모양의 모자 장식은 백제 관등제에서 6품 이상이 착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피장자의 신분을 추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6호분에서는 2개체의 인골이, 7호분에서는 3개체의 인골이 확인된 것으로 보아 당시 매장 풍습을 파악할 수 있다.
백제 사비기 후반기인 7세기 대에 조성된 무덤, 토기 등의 유물 부장 양상이 당시 도읍이었던 부여 지역과 차이가 있어서 이 일대 문화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安承周, 李南奭, 『論山 六谷里 百濟古墳 發掘調査報告書 -1986年度 發掘調査-』(百濟文化開發硏究院, 1988)
논문
- 姜仁求, 「論山 六谷里 百濟古墳과 出土遺物」(『考古美術』 121 · 122, 한국미술사학회, 197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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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고분의 입구에서 시체를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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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깬돌로 널을 안치하는 널방(玄室)을 만들고 외부로 통하는 널길(羨道)를 만든 뒤 흙으로 씌운 무덤 양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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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무덤 속의 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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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임금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이 생전에 쓰던 여러 가지 패물이나 그릇 따위를 무덤에 같이 묻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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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접시에 높은 굽을 붙인, 고대 식기의 하나.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사용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김해ㆍ경주 등지에서 많이 발굴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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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그릇 몸통의 지름보다 속이 깊은 바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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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백제의 십육 관등 가운데 여섯째 등급.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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