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문집 ()

장승택의 농산문집 중 표지
장승택의 농산문집 중 표지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장승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1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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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장승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1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31년 장상필(張相弼)의 편집을 거쳐 이헌우(李憲禹)에 의해 간행되었다. 권말에 장상필의 후지(後識)가 있다.

서지적 사항

15권 8책.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은 시, 권2는 시·서(書), 권3∼5는 서(書), 권6은 잡저, 권7은 서(序), 권8은 기, 권9는 발·잠·명·상량문·축문, 권10은 제문·애사·비명, 권11∼13은 묘지명·묘갈명·묘표, 권14는 행장, 권15는 유사·전(傳), 부록으로 가장·실기(實紀)·행장·묘지·묘갈명·수갈고유문(豎碣告由文)·영정찬(影幀贊)·영정봉안문(影幀奉安文) 등이 실려 있다.

서(書)에는 스승인 장복추(張福樞)를 비롯해 김흥로(金興魯)·이근영(李根永)·장석영(張錫英)·송종익(宋宗翼) 등과 주고받은 것이 많은데, 대부분 별지와 아울러 성리설·태극설·이기설 등 철학적인 논설이 많이 들어 있다. 특히 곽종석(郭鍾錫)과 주고받은 서한은 『한주집(寒洲集)』에 있는 「후천도(後天圖)」에 대한 변론과 심성론·사칠론(四七論)에 관한 문답이 22장이나 된다.

잡저 가운데 「발민사의(撥憫私意)」는 당시의 폐습을 논한 것이다. 저자는 정학(正學)을 숭상하고 사학(邪學)을 배척할 것, 사람을 채용하는 행정방침, 국산품을 애용하고 외제품의 사용을 금지할 것, 삼정(三政)의 문란에서 오는 무궤도한 징세의 시정, 지방관의 부정·부패에 대한 근절책, 외국상인 특히 일본상인들에 의한 상권(商權) 침해의 금단 등 자신의 견해를 12장에 걸쳐 소상하게 밝혔다.

「훈가구법(訓家九法)」은 아홉 가지 가훈(家訓)을 말한 것으로,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도는 한 집안을 잘 다스리는 데 있다고 말하고, 효목을 중심으로 가정과 사회에 대해 11장에 걸쳐 실천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척동비문(斥東匪文)」은 동학당의 비행을 열거해 제2세 교주 최시형(崔時亨) 등은 국가의 역적이요 사문(斯文)의 난적이라고 말하고, 지방관에게 보고해 이웃 고을에 격문을 내자는 내용이다.

「성령각변(性靈覺辨)」은 곽종석과 한 달 이상 걸쳐 주고받은 심성론에 대한 서한을 총정리한 것이다. 그는 근 백년 이래로 당론이 전개되어 학술이 분열되고 각기 의견을 주장하여 서로 갈등이 생겨 주리자(主理者)와 주기자(主氣者)가 서로 공격하고 있어 누가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각자가 반성할 일임을 강조하였다. 이어 주희(朱熹)와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해서도 자기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이 잡저들은 유학사상 연구와 당시의 정치·경제 등을 살피는 데 참고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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