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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최광악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1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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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최광악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1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2권 1책. 목활자본. 1861년(철종 12) 아들 용묵(鏞默)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기정진(奇正鎭)이 1860년에 쓴 서문을 비롯하여 권말에 용묵이 쓴 발문이 실려 있다. 장서각 도서,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95수와 당시의 동료들이 수창(酬唱)한 시 45수, 그밖에 서(序)·발·기·축문·기우제축·제문 등이 있고, 권2에 서(書) 9편, 부록으로 김재일(金載一) 등이 지은 서농와기후(書聾窩記後) 4편, 제문, 나준기(羅俊基) 등의 만사 38수, 계(啓)·분황연운(焚黃宴韻)·명정운(明旌韻), 송달수(宋達洙)가 지은 묘갈명, 강재문인가마록(剛齋門人加麻錄)이 실려 있다.

본집에 수록된 시들은 각 체로 엄격히 분류되었으며, 당시의 동료들과 주고받은 시가 군데군데 보인다. 서간문은 저자가 스승 송치규(宋穉圭)와 주고받은 것으로, 예설문답(禮說問答) 등 학문에 관한 토론이 대부분이다.

부록의 계는 저자의 사후에 향유(鄕儒) 등과 전라관찰사 이유원(李裕元)이 저자의 효행을 기리어 효자표창과 정려(旌閭)의 하명을 정부에 청하는 장계이며, 그 뒤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추증받고 정려가 내려졌다.

「분황연운」·「명정운」등은 그 당시 사림들의 하례시이다. 기정진의 서문에 “당시의 유현(儒賢)들이 추종하였고 경전의 심오한 뜻과 예문(禮文)의 의심난 곳을 연구하였으며, 평생에 세웠던 원대한 포부가 문자와 언어의 밖에 있다.”고 평한 것으로 보아도 저자의 학행과 본집의 작품을 짐작할 수 있다.

끝으로 「강재문인가마록」에는 송치규의 상시(喪時)에 가마한 문인 80인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하여 송치규 문인의 연원(淵源)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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