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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이진용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7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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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이진용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7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4권 4책. 연활자본. 아들 용구(龍九)의 편집을 거쳐, 1937년 현손 병도(丙燾)에 의해 간행되었다. 권두에 김규찬(金奎燦)·조익원(趙翼元)·이상천(李相天)의 서문과 권말에 이만구(李萬九)의 발문을 싣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부(賦)·서(序)·기(記), 권2에 문(文)·행장·잡저·계(啓)·축사·애사·명·서(書), 권3에 서(書), 끝에 부록으로 가장(家狀)·행장 등이 실려 있고, 권4에 한글로 번역한 선비숙인전의이씨행장, 국한문을 혼용하여 지은 근경가(卺慶歌)·낙치가(落齒歌) 등이 실려 있다.

시는 430여수로 비교적 각 체의 시가 들어 있으며, 작품의 제목이 다양한 편이다. 평이(平易)하고 담순(淡醇)해 수식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송운나월(松雲蘿月: 소나무 위에 뜬 구름과 女蘿의 덩굴에 걸리어 보이는 달) 사이에 흥이 날 때 문득 읊조린 것들이다. 그리고 교분이 두터웠던 지기들과 고풍오언(古風五言) 근체시(近體詩)로 15인이 각자의 아호 두 글자 중에서 한 글자씩을 끝구에 운자로 붙여 지은 연구시(聯句詩)가 들어 있다.

기의 「문화향교중수기(文化鄕校重修記)」는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에 있는 문화향교 중수에 대한 기문으로, 향교를 설치한 원인과 유교의 전통 및 유림이 지켜야 할 사항, 그리고 이 고장은 이이(李珥)가 머무른 자취가 남아 있음을 서술하고, 유림은 전통을 계승해 학문을 닦아야 한다고 강조한 글이다.

「노화당기(老華堂記)」와 「아천당기(我泉堂記)」는 모두 그의 선조 이재(李縡)가 살던 용인에 서실(書室)을 지어 당호(堂號)를 붙이고, 자손들에게 학문을 닦아 선조의 유업을 이어받도록 당부한 내용인데, 권2에 수록된 「서실상량문(書室上樑文)」과 아울러 명문이다.

문의 「영달문(迎達文)」은 한유(韓愈)의 「송궁문(送窮文)」을 읽고 잠을 자다가 지(知)·학(學)·문(文)·명(命)·교(交)를 맡고 있다는 다섯 신선을 맞이해 이 다섯 가지를 통달하는 방법을 두고 문답한다는 줄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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