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북도 단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신라의 석축 성곽. 산성.
개설
역사적 변천
그러나 1978년에 발견된 단양신라적성비(국보, 1979년 지정)에는 이 산성을 적성(赤城)이라고 하였다. 비문의 내용에 의하여 이 산성이 법흥왕·진흥왕 때 신라가 죽령(竹嶺)을 넘어 한강의 상류 지역으로 진출하고 북쪽으로 세력을 팽창시키는 요충지로 이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성 안에서는 신라 토기와 기와 조각이 주로 확인되었지만 통일신라시대 토기 조각과 고려시대의 토기·청자 조각도 출토되어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성벽은 깬돌을 안팎을 포개며 엇물린 내외협축(內外夾築)의 방식으로 쌓았다. 북동쪽의 성벽이 잘 남아 있는데, 높이는 3m쯤 되며, 남서쪽·남쪽·동남쪽 성벽에는 성문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산성의 북쪽에 남한강이 흐르고 강 주변이 가파른 절벽이므로, 자연적인 지리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특징
성 안으로 진입하는 출입구는 모두 남쪽벽에 있지만 지표상에서 문터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두 출입구 사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낮아지는 궁형(弓形)으로 성벽이 돌아가고 있으며 동쪽 끝부분과 서쪽 끝부분을 평지로 연결하는 가장 넓은 환도상(還道狀)을 이루고 있다. 북쪽벽은 환도상의 평탄한 서반부와 동향으로 경사진 동반부로 나누어지지만, 군데군데 성벽이 붕괴된 채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대동지지(大東地志)』
- 『문화재지』(충청북도, 1982)
- 『신라 육상교통로 연구』(서영일, 학연문화사, 1999)
- 『단양 적성 지표조사보고서』(충북대학교박물관, 1991)
- 『사학지』12-단양신라적성비특집호-(단국대학교사학회,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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