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조길방 고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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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조길방 고택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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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조선후기 안채 · 아래채 · 사랑채 등으로 구성된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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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조선후기 안채 · 아래채 · 사랑채 등으로 구성된 주택.
내용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 소유자의 먼 윗대 조상은 대구 동북방에 있는 동촌비행장(東村飛行場) 근처에 살고 있었으나, 10대조 광국(光國)대에 가화(家禍)를 당하여 총각의 몸으로 이곳 한덤[大巖]에 숨어들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하며, 안채는 이때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높이가 약 800m나 되는, 경사가 비교적 급한 산간마을인 이곳은 예전에는 15호 가량 살았으나 현재는 6호만 남아 있다. 이 마을에서는 이 집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 한다.

마을이 숨듯이 들어앉은 산 전체가 서향(西向)으로 경사져 있어서 집들은 자연히 서향하게 되었다. 이 집의 안채는 잡석으로 높이 쌓은 축대 위에 서향으로 앉았고, 왼쪽으로 축대를 연장하여 부엌 곁에 장독대를 갖추었다.

축대 앞의 낮은 안마당에는 좌우에 아래채와 사랑채가 마당을 가운데 두고 부속건물처럼 낮게 마주보고 배치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안채의 비중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안채는 남부형(南部型)에 속하는 평면구성으로 2칸마루의 왼쪽에 큰방과 부엌을, 오른쪽에 건넌방을 배치하고 있다. 마루에서 큰방과 건넌방으로 출입하는 외여닫이 골판 세살문은 높이가 매우 낮아서 몸을 구부려야 드나들 수 있다.

특히 안방 전면 벽에 낸 외여닫이 살창문은 그 크기가 매우 작아서 출입보다는 채광과 통풍에 뜻을 두고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건넌방 전면 벽에도 40여 년 전에는 같은 형식의 작은 살창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랑채는 방 2칸과 도장 1칸으로 되어 있으나 소유자의 조부가 60여 년 전에 확장한 것이다. 아래채는 원래 오른쪽에서부터 마구간·방앗간·방의 순서로 배열된 3칸 집이었으나, 30여 년 전 무너진 것을 지금과 같은 간살로 개조하였다.

안채의 구조는 자연석 주초(柱礎) 위에 네모진 기둥을 세우고 방 주위에는 토벽(土壁)을 쳤는데 마루의 앞쪽 기둥만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두리기둥의 윗머리에는 주두(柱頭)나 보아지 없이 보를 바로 얹었고, 삼량가(三樑架)에 동자주(童子柱) 대공(臺工)을 세운 간소한 구조로 되어 있다.

현 소유자의 조부는 이 집이 “싸리기둥에 칠기봇장(칠기나무로 된 보)집”이라고 늘 마을사람에게 자랑하였다고 하는데, 그 기둥(두리기둥)도 밑 부분이 부식하여 끊어내고 이어서 받쳐놓았다.

이 집은 초가로는 드물게 보는 오래된 유구(遺構)로, 특히 안채 개구부(開口部)의 규모와 성격은 주택발달사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집주인 조길방의 사망으로 지금은 그의 아들 칠웅(七雄)이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편 상(문화재관리국, 1985)
『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경상북도,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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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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