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부부와 그들의 미혼자녀 이외에 더 넓은 범위의 친족원을 포함한 가족을 가리키는 가족.
개설
대가족은 구성 범위가 확대되어 있으므로 당연히 가족원의 수가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대가족이라 할 때 이는 단순히 가족원의 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5명의 자녀를 낳은 핵가족은 7인 가족으로서 부부와 그 장남의 부부 4인으로 이루어진 직계가족보다 가족원의 수가 많다. 또한 몇 명 이상이 되어야 ‘대’가족이라고 할지 경계가 분명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대가족제도 하의 조선시대 가족 규모를 살펴보면, 다인수 가족도 존재하지만 평균 가족원 수는 4∼5인으로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원 및 변천
그러나 중국의 대가족이 부모를 중심으로 모든 형제가 혼인하여 함께 가족을 이루어 생활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데 비하여, 조선의 대가족은 장남의 경우는 혼인 후에 부모와 함께 가족을 형성하지만,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경우에 따라서 일부가 부모와 형의 부부와 한 가족을 이루지만(방계가족), 대부분이 독립하여 새로운 가족을 이룬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30년 산음, 1756년 곡성, 1807년 양좌동, 1825년 대구의 호적에 의한 분석을 보면, 양반층의 경우 각각 0%, 5.6%, 9.6%, 8.4%가 방계가족을 이루고 있으며, 직계가족은 각각 8.7%, 23.3%, 40.4%, 33.7%로 나타나고 있다.
내용
핵가족이 부부의 혼인으로 생성되고 성장-축소-소멸의 과정을 겪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직계가족은 한번 생성되면 규모나 세대의 수가 변화하기는 하지만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가계를 계승할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입양을 통해 계후자를 획득하고, 심지어 가족원이 한 명도 없는 경우에도 사후양자를 통하여 일가를 부흥할 수 있다. 이처럼 대를 끊지 않고 가계를 영원히 지속한다는 관념은 직계가족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다. 이러한 가족은 안정성이 높아서 일부 가족원이 사망하거나 이혼하더라도 해체되지 않고 지속된다. 따라서 가족관계는 부자관계 중심으로 편성되고, 효를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조선시대가 직계가족을 이상으로 하는 대가족제 사회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가족유형의 분포를 볼 때 직계가족 또는 방계가족이 다수를 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가족제도 아래서도 한 시점의 가족유형을 보면 부부가족이 다수를 점한다. 앞에서 살펴본 산음, 곡성, 양좌동, 대구의 호적 분석에 의하면, 양반층의 경우 각각 75.9%, 57.8%, 45.2%, 56.4%의 가족이 부부가족으로 나타난다. 이들 부부가족은 장래에 장남이 성장하여 혼인하고 부모와 함께 가족을 이룬다면 직계가족 형태로 이행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장남 이외의 아들들이 혼인과 동시에 분가하는 것이 허용되므로, 한 시점에서 관찰하면 어느 경우라도 부부가족이 다수로 나타나는 것이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가족연구』(최재석, 민중서관, 1966)
- 『한국가족제도연구』(김두헌, 서울대학교 출판부, 1969)
- 『인구주택총조사』(통계청, 2010)
- 『제2차 가족실태조사』(여성가족부, 2010)
- 『한국가족제도의 변화』(한남제, 일지사, 1997)
- 『한국가족제도사연구』(최재석, 일지사, 1983)
- 『한국가족연구』(최재석, 일지사, 1982)
- 『한국가족제도연구』(김두헌, 서울대학교출판부,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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