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호촌(壺村)에서 1382년(우왕 8) 윤2월에 태어났다. 1402년(태종 2) 식년문과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급제한 뒤 예조정랑 · 병조정랑 · 이조정랑을 거쳐 1421년(세종 3) 7월 집현전 부제학에 임명되었으며, 1431년(세종 14) 공조좌참판에 이르렀다.
이런 경력에서 특히 주목되는 사실은 집현전의 첫 번째 부제학으로 발탁되었다는 것이다. 세종은 1420년(세종 2) 3월 집현전을 창설하면서 부제학을 임명하지 않고 신장을 일단 직제학에 제수하였다가 이듬해 7월 부제학으로 승진시켰다. 이른 나이에 급제하고 중요한 학문 기관인 집현전의 첫 책임자로 임명된 것은 신장의 학문적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신장은 학문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하였다. 원자(뒤의 문종)에게 『소학』을 가르치고 사대문서를 전담하였으며, 『태조실록』 · 『정종실록』 · 『태종실록』 · 『팔도지리지』 등을 찬수하는 데 참여하였다. 정초(鄭招) · 정인지(鄭麟趾) · 윤회(尹淮) 같은 당시의 주요 문신들과 함께 「헌남산지곡(獻南山之曲)」을 지어 바치고, 『동인문(東人文)』과 『익재집(益齋集)』을 교정하기도 하였다. 할아버지 신덕린과 함께 명필로 평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