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 ()

조선왕조실록 / 태종실록 표지
조선왕조실록 / 태종실록 표지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 전기, 제3대 왕 태종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
이칭
이칭
태종공정대왕실록(太宗恭定大王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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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조선 전기, 제3대 왕 태종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태종공정대왕실록(太宗恭定大王實錄)’이다. 1401년(태종 1) 1월 1일부터 1418년(태종 18) 8월 8일까지 태종의 재위 18년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정의
조선 전기, 제3대 왕 태종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
서지 사항

36권 16책으로 정족산본(鼎足山本)은 필사본, 태백산본(太白山本)은 인본(印本)이다.

1920년대 이후 조선 역대 왕(태조~철종)의 실록이 여러 차례 영인될 때 함께 영인 · 간행되었다.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모두 8권의 번역본 『태종공정대왕실록』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출간하였고,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번역본과 원문을 공개하고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태종실록』은 조선 전기 제3대 왕 태종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태종공정대왕실록(太宗恭定大王實錄)’이다. 1401년 1월부터 1418년 8월까지 태종의 재위 18년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태종은 1400년(정종 2) 11월에 정종으로부터 양위 받아 즉위했으나, 즉위한 이후부터 그 해 말까지의 사실은 『정종실록』에 수록되어 있다. 부록으로 편수관 명단이 있다.

1422년(세종 4) 5월에 태종(太宗)이 승하하자, 이듬해 12월 세종(世宗)은 춘추관지관사 변계량(卞季良)과 동지관사 윤회(尹淮)의 건의를 받아들여 정종(定宗)과 태종의 실록을 수찬하도록 명하였다. 정종 대와 태종 대 사관(史官)의 사초(史草)를 제출하도록 명하였는데, 서울에 있는 자는 이듬해 2월까지, 경기 · 충청 · 황해 · 강원도에 있는 자는 3월까지, 경상 · 전라 · 평안 · 함경도에 있는 자는 4월까지 제출하도록 하였다.

『태종실록』 편찬 시 감관사로 맹사성, 동지관사로 윤회 등 2명, 기주관으로 안지 등 4명, 기사관으로 안수기 등 10명 등 총 17명이 참여하였다. 동부 연희방(燕喜坊)에 있는 덕흥사(德興寺)에 사국(史局)을 개설하고, 1424년(세종 6) 3월부터 변계량 · 윤회 · 신장(申檣)의 책임 하에 양조(兩朝) 실록 편찬에 착수하였다. 춘추관 변계량이 병약해 춘추관으로 매일 출퇴근하기 어렵다고 하자, 그에 대한 배려로 집 근처의 덕흥사를 편찬 사무소로 정한 것이었다.

2년 뒤인 1426년(세종 8) 8월에 우선 『정종실록』을 완성하였다. 계속해 『태종실록』을 편찬하던 중 변계량이 1430년(세종 12) 4월에 사망하자, 편찬 사무소를 의정부(議政府) 건물로 옮겼다. 좌의정 황희(黃喜)우의정 맹사성(孟思誠)이 뒤를 이어 윤회 · 신장 등과 함께 편찬 책임을 맡아 1년 후인 1431년(세종 13) 3월에 완성하였다.

1438년(세종 20)에 변계량이 지은 헌릉(獻陵) 비문(碑文) 가운데 1398년(태조 7)의 제1차 왕자의 난과 1400년(정종 2)의 제2차 왕자의 난에 대해 사실과 어긋난 내용이 있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세종은 이를 바로잡아 고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태조실록』 · 『정조실록』 · 『태종실록』도 개수되었다.

4년 뒤인 1442년(세종 24) 춘추관감관사 신개(申槩), 지관사 권제(權踶) · 동지관사 안지(安止) 및 집현전학사 남수문(南秀文) 등의 주관으로 실록 개수가 완료되었다.

『태종실록』은 1431년에 완성된 직후 이미 편찬된 『태조실록』 · 『정종실록』과 함께 고려시대의 실록을 보관해 둔 충주사고에 봉안하였다. 그러나 영구 보존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자, 1445년까지 위의 삼조 실록(三朝實錄) 3부를 더 필사해 춘추관과 충주 및 신설한 전주 · 성주사고에 각각 1부씩 봉안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된 정족산본의 태조 · 정종 · 태종의 삼조 실록은 이때 필사해 전주사고에 봉안한 것이다.

의의 및 평가

태종의 재위 기간은 개국 초창기로서 대외적으로는 명나라와의 관계를 호전시키고, 여진과 왜에 대해서는 회유와 강경의 양면 정책을 취하였다. 대내적으로는 한양(漢陽)으로의 재천도 단행과 억불 정책을 강행하는 한편, 왕권 강화와 중앙 집권화를 위한 제반 제도의 개편을 단행해 왕권을 확립하고 유교적 양반 관료 국가의 기틀을 갖추어 나간 시기였다. 『태종실록』은 태종 대의 역사적 사실과 조선 초기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자료이다. 조선 초기 다른 실록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태조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
『문종실록』

단행본

김경수, 『조선시대의 사관연구』(국학자료원, 1998)
배현숙, 『조선실록 연구서설』(태일사, 2002)
오항녕, 『한국 사관제도 성립사연구』(한국연구원, 2003)
이성무, 『조선왕조실록 어떤 책인가』(동방미디어, 1999)

논문

강문식, 「『조선왕조실록』 연구의 현황」(『조선시대사학보』 74, 조선시대사학회, 2015)
신석호,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 보관」(『사총』 5, 고대사학회, 1960)
신석호, 「태조실록해제」(『국역 태조강헌대왕실록』 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2)
신석호, 「태종실록해제」(『국역 태종공정대왕실록』 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정구복, 「조선초기 춘추관의 실록 편찬」(『한국사학논총: 택와허선도선생정년기념』, 일조각, 1992)
차용걸, 「조선왕조실록의 편찬태도와 사관의 역사인식」(『한국사론』 6, 국사편찬위원회, 1979)
차용걸, 「실록·사관·사고에 대하여」(『사고지조사보고서』, 국사편찬위원회, 1986)

인터넷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소개」(http://sillok.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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