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참판, 공조판서,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45년(세종 27) 공조참판으로 권제(權踶)·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쳤다. 이듬해 호조참판으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집현전부제학·이조참판을 거쳐 공조판서에 올랐으나, 사필(史筆)의 일로 고신(告身)을 환수당하였다.
1455년(세조 1)에 소환되어 지중추원사에 복관이 되고, 이어 영중추부사에 올랐다. 세조가 즉위한 뒤 관작을 주었는데, 그 때 안지의 나이 80세가 넘었는데도 강건하므로 세조가 기뻐하여 시를 지어 하사하였다.
시를 지을 때 속된 말을 섞어서 빨리 잘 짓고, 짧은 서간에까지도 거의 시로 말뜻을 이끌어갔다. 또 해서를 잘 써서 일찍이 세종의 명으로, 태종을 위하여 『금자법화경(金字法華經)』을 베꼈다. 뒤에 경산의 조곡서원(早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 『해동잡록(海東雜錄)』
- 『필원잡기(筆苑雜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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