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말주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 전주부윤, 진주목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사간원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집(子楫)
귀래정(歸來亭)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29년(세종 11)
사망 연도
1503년(연산군 9)
본관
고령(高靈)
주요 관직
사간원 대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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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신말주는 조선 전기 전주부윤, 진주목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사간원 대사간(司諫院 大司諫)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신숙주의 동생이다. 단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사간원에서 근무하다가 세조 즉위 이후 더욱 중용되었다. 여러 관직을 거치다가 사간원 대사간에 제수되었다. 성종 즉위 후에는 주로 외직을 담당하다가 다시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야사에는 그가 단종 폐위 이후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당대의 기록과 비교하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

정의
조선 전기 전주부윤, 진주목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사간원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자는 자집(子楫), 호는 귀래정(歸來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화가 신덕린(申德隣), 할아버지는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던 신포시(申包翅), 아버지는 공조참판(工曹參判)을 지냈던 신장(申檣)이다. 다섯째 중 막내였으며, 신숙주(申叔舟)가 셋째 형이다.

주요 활동

1451년(문종 1) 사마시(司馬試)에 입격하였고, 1454년(단종 2)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신말주가 문과에 급제하였을 때 셋째 형 신숙주는 도승지(都承旨)로 있었다. 집에서 과거 급제 축하연을 벌였는데, 단종이 술 30병을 내렸다. 세조 즉위 이후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이후 사간원 우정언(右正言)과 우헌납(右獻納)에 임명되어 대간으로 활동하였다.

세조 재위기에 예조정랑(禮曹正郞),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사간원(司諫院) 사간(司諫), 대사간(大司諫), 형조참의(刑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성종이 재위한 이후에는 전주부윤(全州府尹), 진주목사(晉州牧使), 창원 도호부사(昌原 都護府使), 경상우도 병마절도사(慶尙右道 兵馬節度使) 등의 외직을 담당하였다. 1487년(성종 18) 다시 사간원 대사간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았던 소문으로 김석(金磶)의 추문(推問)을 주장하다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죄를 청해 좌천되었다. 2개월 후 다시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임명되었다.

야사에는 신말주가 단종이 폐위된 이후 순창(淳昌)에 머물면서 벼슬하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세조 대 2등 원종공신으로 녹훈되었고, 계속 대간의 역할을 수행하다가 대사간까지 맡았던 기록이 확인된다. 따라서 신말주가 단종 폐위 이후 벼슬에서 물러나 관직 생활을 피하였다는 이야기는 그의 생애와 관련된 정확한 서술로 보기는 어렵다.

참고문헌

원전

『국조방목(國朝榜目)』
『단종실록(端宗實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문종실록(文宗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어우집(於于集)』
『예종실록(睿宗實錄)』
『해동잡록(海東雜錄)』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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