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덕교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 형조좌랑, 흥덕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가화(可化)
동호(東湖)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51년(명종 6)
사망 연도
1611년(광해군 3)
본관
개령(開寧)
출생지
함경남도 함흥
주요 저서
동호문집(東湖文集)
주요 관직
흥덕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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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문덕교는 조선 전기 형조좌랑, 흥덕현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선조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을 사람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전쟁이 끝난 후 흥덕현감에 제수되었으나, 2년 만에 물러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현종 대 함흥에 있는 문회서원의 별사에 배향되었다. 시문집 『동호문집』이 전해진다.

정의
조선 전기 형조좌랑, 흥덕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개령(開寧), 자는 가화(可化), 호는 동호(東湖)이며, 함경남도 함흥 출신이다. 6대조(六代祖) 문천봉(文天奉)이 함흥으로 이주한 이후 대대로 같은 지역에서 거주하였다. 증조할아버지부는 문치녕(文致寧), 할아버지는 문한(文翰)이다. 아버지는 군자감 봉사(軍資監奉事)와 순릉참봉(純陵 參奉)을 지낸 문오(文鰲)이다. 어머니 전주주씨(全州朱氏)는 승사랑(承仕郞)을 지낸 주몽선(朱夢宣)의 딸이다. 부인 청주 한씨(淸州韓氏)는 한팽령(韓彭齡)의 딸이다. 후일 재혼한 장흥위씨(長興魏氏)는 위희필(魏希弼)의 딸이다. 문선교(文善敎)와 문명교(文名敎)가 동생이다.

주요 활동

1551년(명종 6)에 태어났다. 1573년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1585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형조좌랑, 흥덕현감(興德縣監)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을 사람들과 뜻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그런데 평소에 문덕교에 원한이 있던 진대유(陳大猷)가 일본군에 문덕교를 고발하였다. 일본군이 집을 포위하였을 때 문덕교는 없었지만, 부모와 동생 문선교는 모두 사로잡혔다. 이때 문선교가 자신이 문덕교라고 하자 일본군이 부자를 살해하였다. 가노(家奴) 인수(仁守)가 적진 중에 몰래 들어가 주인의 시신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자결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602년 흥덕현감에 제수되었다. 2년 만에 관직에서 물러나 광호(廣湖) 근처에 머무르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당시 김상헌(金尙憲) 등과 교유하면서 지냈다. 1611년(광해군 3) 6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추모와 저술

1667년(현종 8) 함흥에 있는 문회서원(文會書院)의 별사(別祠)에 배향되었다. 시문집으로 『동호문집(東湖文集)』을 남겼다. 1671년 함경도관찰사였던 남구만(南九萬)의 아들 남학명(南鶴鳴)이 문덕교가 남긴 글을 모았다가 후일 문집으로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선조실록(宣祖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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