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세조~성종 대에 승정원 도승지, 이조참판,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470년(성종 1) 사은사(謝恩使) 김국광(金國光), 정난종(鄭蘭宗)과 함께 서장관(書狀官)으로 베이징〔北京〕에 사행을 다녀왔다. 이후 「조천록(朝天錄)」을 남겼다. 군기시정(軍器寺正), 통례원 좌통례(通禮院左通禮),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등을 거쳐 형조참의(刑曹參議)에 제수되었다. 승지직을 차례대로 역임한 후 1478년 도승지에 제수되었다. 2개월 후에는 이조참판에 임명되었고, 계속해서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과 사헌부 대사헌에 제수되었다.
대사헌으로 있는 동안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 문제를 계속 상소하다가 성종의 명에 따라 의금부(義禁府)의 추국(推鞫)을 당하였다. 이 문제 때문에 체직을 당하였지만 바로 서용되었다.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를 제수받고 외직으로 나아갔다. 1481년 58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성종실록(成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음성박씨세보(陰城朴氏世譜)』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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