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이 조선에 대하여 은혜를 베풀었을 때 이를 보답하기 위해 파견하였다. 진하사(進賀使)·진위사(陳慰使)·주청사(奏請使)·진향사(進香使)와 함께 주로 행해졌으며, 수시로 보내던 임시사절 가운데 하나였다.
사행의 구성은 주청사·진하사·변무사(辯誣使)와 같았는데, 정사 1인, 부사 1인, 서장관 1인, 당상 역관 1인, 상통사(上通事) 2인, 질문종사관(質問從事官) 1인, 압물종사관(押物從事官) 8인, 청학신체아(淸學新遞兒) 1인, 의원 1인, 사자관(寫字官) 1인, 별견어의(別遣御醫) 2인, 별계청(別啓請) 1인, 가정압물관(加定押物官) 2인, 군관(軍官) 8인, 우어별차(偶語別差) 1인, 만상군관(灣上軍官) 2인 등이었다.
방물로 가지고간 예물은 진위·진하 사행 때와 같은데, 황제에게 여러 색깔의 모시와 명주, 여러 색깔의 화석(花席 : 무늬를 놓은 돗자리), 백면지(白綿紙) 등이었고, 황후에게는 여러 색깔의 모시와 명주·화석 등이었다.
그리고 황태후에게는 황후와 같았으며 황태자에게는 흰색 고운 모시·여러 색깔의 화석·백면지·황모필(黃毛筆)·유매묵(油煤墨)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