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1책. 석판본.
1964년 그의 후손 진기(進基)·남국(南國) 등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윤형식(尹馨植)의 서문과 권말에 백관기(白觀基)·백남주(白南柱)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15수, 소(疏) 3편, 서(書) 3편, 잡저 1편, 제문 3편, 행장 1편, 유묵 1점, 권2·3은 부록으로 시 8수, 만사·통문 각 2편, 가장·묘갈명·세계 각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소의 <신구박현석 윤명재양선생소 伸救朴玄石尹明齋兩先生疏>는 전 이조판서 박세채(朴世采)의 파직은 부당한 것으로 세용(世用)과 경국(經國)을 위해 복직시킬 것과 윤증(尹拯)에 대한 배사(背師)의 의론은 이미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이상, 특용(特用)하여 종사(宗社)의 보익(輔翼)으로 삼을 것을 주청한 글이다.
또한, 사림을 대표해서 올린 <봉암서원청액소 鳳巖書院請額疏>는 임진왜란 때 화차(火車)를 만들어 권율(權慄)을 도와 대공을 세운 변이중(邊以中)의 공훈과 입암산성(笠巖山城)을 지키다 순절한 윤진(尹軫)의 절의, 광해군의 패륜과 정인홍(鄭仁弘)의 무리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린 것이다.
그리고 장성에 은거한 변경윤(邊慶胤)의 충효, 주경정학(主敬精學)한 변휴(邊烋)의 학행을 추모하여 그들을 제향한 봉암서원에 대해 사액하여 줄 것을 청하고, 그들의 업적을 선양하여 풍교를 흥기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전주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