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관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중국으로 가는 외교사절단의 지휘부 ‘삼사신(三使臣)’ 가운데 한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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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서장관(書狀官)은 조선시대에 중국으로 가는 외교사절단의 지휘부 ‘삼사신(三使臣)’ 가운데 한 관직이다. 왕복 약 5개월 동안의 사행 기간 동안 보고 들은 각종 외교 정보를 기록하여 국왕에게 보고하고, 사행단의 비리나 부정을 감찰(監察)하는 임무를 맡았다. 주로 사헌부의 4품에서 6품 관원 중에서 임명되었으며, 일본 통신사도 비슷한 체제로 운영되었다.

정의
조선시대, 중국으로 가는 외교사절단의 지휘부 ‘삼사신(三使臣)’ 가운데 한 관직.
설치 목적

조선시대에 중국과의 외교는 오늘날과 같이 외교 상대국에 ‘ 대사(大使)’가 상주하는 형태가 아니라, 규정된 시기 또는 특정 외교 사안이 발생하였을 때 파견하는 외교사절단인 사행단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사행단이 이른바 ‘움직이는 대사관’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각종 외교 문제를 해결하고 무역을 수행하였다. 사행단은 외교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인적 구성원인 것이다.

임무와 직능

사행단의 지휘부는 정사(正使), 부사(副使), 서장관으로 구성되었다. 정사는 황제에 보내는 표문(表文)을, 부사는 황태자에 보내는 전문(箋文)을 바치는 임무를 맡았으며 사행의 업무와 일정을 총지휘하였다. 서장관은 한양과 북경을 왕복하는 약 5개월 동안, 사행단이 보고 들은 각종 외교 정보를 기록하여 국왕에 보고하고, 사행단의 비리나 부정을 감찰(監察)하는 임무를 맡았다.

서장관의 두 가지 임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장관은 사행 기간 중 수집한 각종 외교 정보를 정리하여 귀국 후 승정원(承政院)에 문서로 올렸고〔견문사건(聞見事件)〕, 국왕은 이를 보고받은 뒤 외교 향방을 대신들과 논의하였다. 이는 조선 태종 대에 조말생(趙末生)이 사행에 다녀와 정보 수집 문서를 왕에게 바친 후 공식화되었다.

서장관의 견문사건은 사행의 귀국 보고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 대외 정보를 파악하는 정식 문서가 되었다. 후대에도 대외관계 시 참고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활용하는 ‘보존 기록물’이 되었고, 이러한 서장관의 임무는 『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수록되었다.

또한 사행단은 한양과 북경을 왕복하며 중국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길었으며,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의 규율 유지와 밀무역 등의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감찰 관원이 필요하였고, 이 임무를 서장관이 수행하였다.

국초에는 사행단의 밀무역을 방지하기 위해 행대감찰(行臺監察)이 평안도 의주에서 사행원의 수하물을 검수하였으나, 세종 대에 서장관을 종6품인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로 임명하면서, 사행단의 감찰도 서장관이 하게 하였다. 이는 사행 기간 동안 사행원의 불법행위를 지속적으로 감찰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서장관은 조선 후기까지 감찰 업무를 담당하는 사헌부의 4품~6품 관원 중에서 주로 임명되었다.

서장관의 의무는 이같이 크게 두 가지이지만,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외교 분쟁이 발생하면 서장관도 정사를 도와 외교 문제 해결을 돕기도 하였다.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通信使) 서장관도 이와 비슷한 체제로 운영되었다.

의의 및 평가

조선은 서장관의 감찰 임무를 통해 외교 업무의 중추인 사행단이 규율과 원칙을 지키며 공정한 업무를 수행하게 하였으며, 서장관의 귀국 보고문을 의무화하고 영구 보존하게 하여, 향후 외교 문제 발생 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는 외교 행정 기반을 마련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괴원등록(槐院謄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통문관지(通文館志)』

논문

구도영, 「16세기 조선 대명 사행단의 정보수집과 정보력」(『대동문화연구』 95,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2016)
김경록, 「조선시대 사행과 사행기록」(『한국문화』 38, 규장각한국학연구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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