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압사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명나라에 4년에 1번씩 말을 조공할 때 파견되던 사행(使行).
제도/법령·제도
제정 시기
1396년(태조 5)
시행 시기
조선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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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관압사는 조선시대, 명나라에 4년에 1번씩 말을 조공할 때 파견되던 사행(使行)이다. 관압사는 세종 대 이래 정조사(正朝使)와 동행하였고, 1531년(중종 26) 정조사가 동지사(冬至使)로 대체되면서, 동지사와 함께 파견되었다. 관압사는 정3품 당상(堂上) 문무 관료 중에서 선정되었고, 당상관인 역관(譯官) 중에서 선정되기도 하였다. 관압사는 명나라와의 관계 속에 형성되었으며, 명 시기에만 존속하였고, 청나라와 관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파견되지 않았다.

정의
조선시대, 명나라에 4년에 1번씩 말을 조공할 때 파견되던 사행(使行).
설치 목적과 임무

관압(管押)이란 말이나 사람 등을 압송하여 보낸다는 뜻이다. 1396년(태조 5)에 홍무제가 외교문서 표(表) · 전문(箋文)을 지은 관료를 명나라로 압송하라 하여 예문춘추관 학사 권근(權近)우승지 정탁(鄭擢)을 명나라에 보내는 일로 관압사가 파견되었다.

또한 1426년(세종 8) 표류된 조선인을 일본이 안전하게 돌려보내자 이에 대한 보답으로 선물을 하사하는 사물관압사(賜物管押使)를 대마도에 파견하였다.

이처럼 물건이나 사람을 외국에 보내는 일로 관압사를 파견한 사례도 일부 있지만, 이를 제외하면 조선시대 관압사란 대개 명나라 황제에게 4년에 1번씩 말을 조공하는 사행(使行)을 일컬었다. 『대명회전(大明會典)』에는 3년에 1번씩 말 50필을 바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세종 대 이래 4년에 1번씩 말을 조공한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은 명나라에 보내는 정기 사행의 정사(正使)를 보통 종2품 문무(文武) 관료 중에서 선정하였는데, 관압사는 정3품 당상(堂上) 문무 관료 중에서 선정하였고, 간혹 당상관역관(譯官)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변천 사항

국초에는 관압사도 황제에게 올리는 외교문서 표문(表文)을 바쳤으나, 표문이 있으면 방물(方物)이 있어야 하는데, 관압사는 말 이외에 별도의 방물이 없으므로 15세기 어느 시점 이후 표문 없이 명나라 예부에 자문(咨文)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관압사는 설날을 축하하기 위하여 10월에 파견되는 정조사(正朝使)와 동행하였으며 1531년(중종26) 정조사가 동지(冬至)에 파견되는 사신인 동지사로 바뀌면서 관압사도 동지사와 함께 8월에 한양을 출발하게 되었다

말을 정기적으로 조공하는 관압사는 명나라와의 관계 속에 형성된 사행으로, 명 시기에만 존속하였다. 따라서 청나라와 관계를 시작하면서 더 이상 파견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원전

『대명회전(大明會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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