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8년(충렬왕 34)에 충선왕이 문한서(文翰署 : 翰林院)와 사관(史館 : 春秋館)을 합친 기관이다.
관원으로는 종2품 대사백(大詞伯) 3인을 비롯하여, 그 아래 사백(詞伯) 2인, 직사백(直詞伯) 2인, 응교 2인, 공봉(供奉) 2인, 수찬 2인, 주부 2인, 검열 2인을 두었다. 본래 사관의 수찬관을 한림학사가 겸하고 있었으므로 예문관과 춘추관은 처음부터 병합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겠다.
충선왕은 이러한 성격의 두 기관이 결합되어 실용적이었던 원의 한림국사원(翰林國史院)을 본받아 예문춘추관으로 합치고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1325년(충숙왕 12)에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다시 나뉘었다가 1389년(공양왕 1)에 다시 합쳐져 예문춘추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