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1211∼1213. 이름은 왕숙(王璹) · 왕정(王貞) · 왕오(王祦), 자는 대화(大華). 명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광정태후 김씨(光靖太后金氏), 비는 원덕태후 유씨(元德太后柳氏)이다.
1171년(명종 1) 관례를 올리고, 1173년 태자에 책봉되었다. 1197년 부왕과 함께 최충헌(崔忠獻)에게 쫓기어 강화도로 갔다가, 1210년(희종 6)에 소환되어 이듬해 수사공 상주국 한남공(守司空上柱國漢南公)에 책봉되었다. 같은 해 12월 최충헌에게 옹립되어 폐위된 희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최씨 무단정치로 실권이 없었다.
왕의 생일을 광천절(光天節)이라 정하고, 왕모 의정왕후 김씨(懿靖王后金氏)를 광정태후로 추존하였다. 또한, 원자 왕진(王瞋: 뒤의 高宗)을 태자에 책봉하고, 왕비 유씨를 연덕궁주(延德宮主)로 하였다. 시호는 원효(元孝)이며, 장지는 후릉(厚陵: 경기도 개풍군 현화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