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5년부터 시작된 몽골의 제3차 침입은 그 이듬해에 가주(嘉州: 지금의 박천)·선주(宣州: 지금의 선천)·구주(龜州: 지금의 구성) 및 황주(黃州)·신주(信州: 지금의 신천) 등지를 유린하고, 그해 7월 개주(지금의 희천)를 침범했다.
그 때, 경별초 교위(京別抄校尉) 희경(希景)과 개주 중랑장(价州中郎將)인 명준(明俊) 등이 복병을 내세워 몽골군을 쳐서 많은 사상자를 내게 하였고, 안마(鞍馬)·궁시(弓矢)·의복 등을 노획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개주전투는 다른 곳에서 많이 보이는 농민들이 주축이 된 방어전과는 달리, 중앙에서 일정한 임무를 받아 파견된 별초군(別抄軍)이 주축이 되어 비정규전으로 몽골군을 물리쳤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