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예의판서, 보문각제학 등을 역임한 서화가.
내용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 등과 친교가 있었고 고려가 망한 뒤에는 광주(光州)에서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는 해서·초서·예서에 모두 능하여 당대에 이름이 높았으며, 특히 예서의 한 종류인 팔분체(八分體)로 많은 글을 썼다고 한다.
그의 필체는 독특하여 당시 사람들이 덕린체(德隣體)라고 불렀다. 그의 그림으로는 구덕수궁미술관 소장인 「산수도(山水圖)」가 있으나 양식면으로 볼 때 조선 후기의 남종화(南宗畫)와 유사점이 많이 보이는 작품이므로 그 진위여부를 알기 힘들다.
그의 서체의 모간(模刊)은 『고금법첩(古今法帖)』에 전한다. 두문동 72현의 한사람으로 고령의 영연서원(靈淵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대동기문(大東奇聞)』
- 『한국서예사(韓國書藝史)』(김기승, 박영사, 1974)
- 『한국회화대관(韓國繪畵大觀)』(유복렬 편, 문교원, 1969)
- 『한국서화인명사서(韓國書畵人名辭書)』(김영윤, 예술춘추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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