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초명은 명한(命漢) · 팽석(彭石) · 팽랑(彭郞)이고, 자는 정평(正平), 호는 소하(小霞)이다. 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신대승(申大升)이며, 아버지는 신위(申緯)이다. 어머니는 신위의 첩 창녕 조씨(昌寧曺氏)이며,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은 신명연(申命衍), 신명만(申命澫), 신명두(申命斗)이다.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으며, 아들은 신모(申模)이다.
서화에 이름이 있었던 이건필(李建弼), 윤정(尹程)과 인척이다. 강이오(姜彛五), 박영보(朴永輔), 이상적(李尙迪)과 교유했으며, 조희룡(趙熙龍)과도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819년 정시(庭試)를 거쳐 1831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840년 음성 현감으로 부임했으나, 2년 뒤인 1842년에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신위에게 시화(詩畵)를 배웠으며, 동생 신명연과 함께 시사(詩社) 모임에 참석했다. 소식(蘇軾)에 바탕을 둔 아버지의 학문과 예술 정신을 계승했으며, 신위와 함께 대소하(大小霞)라 불리었다. 신위의 명으로 정약용(丁若鏞)과 보혜상인(普惠上人) 등에게 그림을 그려주었으며, 아버지와 교유한 청나라 진용광(陳用光), 장심(張深) 등이 그에게 시를 써주었다.
또한 아버지, 동생과 함께 소식을 배우는 이학무(李學懋)를 위해 「시령도(詩舲圖)」를 그려주었다. 1819년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시장경비(施藏經碑)를 발굴하는 등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신명준은 산수를 잘 그렸으며, 당대 문인들은 황공망(黃公望), 예찬(倪瓚), 미불(米芾)의 화풍을 따랐다고 평가했다. 문인들의 전별연을 그린 산수인물화와 「후적벽부(後赤壁賦)」를 변용한 작품, 청대 정통파 화풍을 구사한 산수화와 오진의 필의(筆意)를 방(倣)한 선면화(扇面畵) 등 사의적(寫意的)인 문인산수화를 남겼다.
대표작으로 「시령도」, 「상봉투기도(相逢投機圖)」, 「산방전별도(山房餞別圖)」,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 「산수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