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연 ()

신명연필 화훼화
신명연필 화훼화
회화
인물
조선 후기, 화훼, 화조, 초충에 뛰어났던 서화가.
이칭
실부(實夫)
애춘(靄春)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08년
사망 연도
1886년
본관
평산(平山)
주요 작품
초충도, 산수화훼화첩, 화훼도 10폭 병풍, 애춘화첩, 설경산수도, 묵란도, 홍백매도, 동파입극도
주요 관직
주부|오위장|결성 현감|수군첨절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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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신명연은 조선 후기 화훼, 화조, 초충에 뛰어났던 서화가이다. 신위의 아들로, 산수, 화훼, 화조, 초충, 사군자, 괴석, 인물화에 두루 뛰어났다. 청대 정통파 화풍, 18세기 운수평 화풍, 양주화파의 화풍을 수용하여 개성적인 회화 세계를 확립했다.

정의
조선 후기, 화훼, 화조, 초충에 뛰어났던 서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자는 실부(實夫)이고, 호는 애춘(靄春)이다. 소론 명문가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신대승(申大升), 아버지는 신위(申緯)이다. 어머니는 신위의 첩인 창녕 조씨(昌寧曺氏)이며, 4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신명준(申命準), 동생은 신명만(申命澫), 신명두(申命斗)이다. 조카사위 이건필(李建弼)이 서화에 이름이 있었으며, 사돈 윤정(尹程)도 산수화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남산수(南山壽)의 딸 의령 남씨(宜寧南氏)와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주요 활동

신명연은 10대 초반에 신위의 지도하에 시와 그림을 익혔고, 형 신명준과 함께 시사(詩社)에 참석했다. 17세인 1825년에는 알성 무과에 합격했으며, 주부(主簿), 오위장(五衛將), 결성 현감,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등을 역임했다.

신명연은 소식(蘇軾)의 문인화론에 바탕을 둔 아버지의 회화관과 집안에 소장된 청대 작품에 기반하여 개성적인 회화 세계를 이루었다. 청대 정통파 산수화풍과 운수평(惲壽平)을 따른 18세기 화훼화풍, 양주화파의 신감각을 적극 수용했으며, 시화일치(詩畵一致)를 추구하였다. 산수는 세로 폭이 긴 화면에 경물을 반복해서 그린 정통파 산수화와 소림모정도류(疏林茅亭圖類), 방작(倣作)을 주로 그렸다. 수채화 같은 담채를 사용한 「강산무진도」는 근대적인 참신한 면모를 보여준다.

화훼, 화조, 초충은 김홍도 작품과 화보의 학습에서 벗어나 18세기 운수평 화풍을 바탕으로, 형사(形似)를 놓치지 않으면서 대상의 생동감보다 화면의 조형성을 추구하였다. 등꽃, 수선화, 자양화 등 새로운 소재를 시도했으며, 섬세한 필치와 화사한 채색을 사용하여 화훼 자체의 아름다움을 부각하였다. 사군자는 매죽난국을 두루 그렸으며, 매화도에서 나빙(羅聘) 같은 청대 양주화파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괴석도는 소품으로 그려지던 이전 시기와 달리 수직으로 상승하는 바위의 기상을 강조했으며, 사의적(寫意的)인 필묵을 구사했다. 사녀화(仕女畫)와 1865년 박봉빈(朴鳳彬)이 주관한 동파제(東坡祭)를 위해 그린 「동파입극도(東坡笠屐圖)」는 청대 인물화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처럼 신명연은 청대 화풍을 바탕으로 다양한 화목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으며, 새로운 미감을 담은 화훼, 화조, 초충도의 발전을 이끌었다.

주요 작품으로 「초충도」[1846], 『산수화훼화첩』[1864], 「화훼도」 10폭 병풍, 『애춘화첩(靄春畵帖)』, 「설경산수도」[1877], 「묵란도」[1862], 「홍백매도(紅白梅圖)」, 「동파입극도」[1865] 등이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역대서화가사전 상』(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오세창, 『국역 근역서화징 하』(시공사, 1998)

논문

권혜은, 「새로운 <동파입극도>의 등장과 의미」(『애중: 아끼고 사랑한 그림 이야기』, 국립광주박물관, 2023)
고연희, 「신위의 감각과 신명연의 색채」(『한국한문학연구』 75, 한국한문학회, 2019)
배진경, 「애춘 신명연(1809-1886)의 화훼화 연구」(『미술사학보』 53, 미술사학연구회, 2019)
최열, 「신명연, 19세기 색채의 시대를 이끈 화조화의 명가」(『내일을 여는 역사』 56,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14)
신성란, 「애춘 신명연의 회화」(『미술사연구』 21, 미술사연구회, 2007)
김현권, 「19세기 조선 및 근대화단의 사왕 화풍 수용」(『근대미술연구』, 국립현대미술관, 2005)
이원복, 「애춘 신명연의 채색화훼화: 조선말 이색화풍의 한 지류」(『동원학술논문집』 8, 국립중앙박물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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