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연은 10대 초반에 신위의 지도하에 시와 그림을 익혔고, 형 신명준과 함께 시사(詩社)에 참석했다. 17세인 1825년에는 알성 무과에 합격했으며, 주부(主簿), 오위장(五衛將), 결성 현감,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등을 역임했다.
신명연은 소식(蘇軾)의 문인화론에 바탕을 둔 아버지의 회화관과 집안에 소장된 청대 작품에 기반하여 개성적인 회화 세계를 이루었다. 청대 정통파 산수화풍과 운수평(惲壽平)을 따른 18세기 화훼화풍, 양주화파의 신감각을 적극 수용했으며, 시화일치(詩畵一致)를 추구하였다. 산수는 세로 폭이 긴 화면에 경물을 반복해서 그린 정통파 산수화와 소림모정도류(疏林茅亭圖類), 방작(倣作)을 주로 그렸다. 수채화 같은 담채를 사용한 「강산무진도」는 근대적인 참신한 면모를 보여준다.
화훼, 화조, 초충은 김홍도 작품과 화보의 학습에서 벗어나 18세기 운수평 화풍을 바탕으로, 형사(形似)를 놓치지 않으면서 대상의 생동감보다 화면의 조형성을 추구하였다. 등꽃, 수선화, 자양화 등 새로운 소재를 시도했으며, 섬세한 필치와 화사한 채색을 사용하여 화훼 자체의 아름다움을 부각하였다. 사군자는 매죽난국을 두루 그렸으며, 매화도에서 나빙(羅聘) 같은 청대 양주화파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괴석도는 소품으로 그려지던 이전 시기와 달리 수직으로 상승하는 바위의 기상을 강조했으며, 사의적(寫意的)인 필묵을 구사했다. 사녀화(仕女畫)와 1865년 박봉빈(朴鳳彬)이 주관한 동파제(東坡祭)를 위해 그린 「동파입극도(東坡笠屐圖)」는 청대 인물화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처럼 신명연은 청대 화풍을 바탕으로 다양한 화목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으며, 새로운 미감을 담은 화훼, 화조, 초충도의 발전을 이끌었다.
주요 작품으로 「초충도」[1846], 『산수화훼화첩』[1864], 「화훼도」 10폭 병풍, 『애춘화첩(靄春畵帖)』, 「설경산수도」[1877], 「묵란도」[1862], 「홍백매도(紅白梅圖)」, 「동파입극도」[1865] 등이 있다.